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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Aug 11. 2023

옷들의 공격이 시작되다

한여름의 전쟁

드레스룸에 옷을 걸어두려는데 공간이 빡빡한 탓인지 옷걸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행거 랙 가장 왼쪽에 위치한 옷걸이를 최대한 바짝 붙였다. 이후 차례대로 조금씩 조금씩 공간을 만들며 좌측으로 밀착시켰다. 겨우겨우 옷걸이 하나 들어갈 만한 틈새가 생겼고 욱여넣듯 밀어 넣었다. 택도 제거되지 않은 새 옷은 첫날부터 꾸깃꾸깃해졌다.


다른 행거 랙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의 여유 공간은 없는 듯했다. 옷을 빼고 넣을 때마다 옷걸이가 다른 옷걸이를 건드리면서 각도가 틀어지거나 걸려 있는 옷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옷 하나하나가 수행할 역할이 있다는 생각에 함부로 내보내지 않았다. 매일매일 코디를 바꾸고 상/하의 또는 이너와 아우터를 조화롭게 맞춰 입으려면 우선 그 가짓수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를 들였을 때,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또 다른 하나를 사는 일까지 반복되었다. 앞서 말했던 200벌을 샀을지 모를 그 해(2020년~)에 갑작스럽게 옷이 불어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제는 옷걸이 수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가디건들을 옷걸이에서 빼서 (자주 입지 않는) 반팔티 위에 걸쳐 놓았다. 그 위에는 재킷을 걸었다. 1타 3 피였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아직 출근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간단히 요가를 했다.


머리를 말린 후 미리 생각해 둔 옷 - 와이드 핏 데님팬츠와 레터링 화이트 티셔츠-을 꺼내러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티셔츠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 세탁 후 말려서 넣어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상하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가끔 딸이 내 옷을 입기도 하기에 아이 방으로 들어가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무슨 옷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새 땀이 흥건해졌다. 다시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다시 찾아봤지만 없었다. 자주 안 입는 옷들을 뒤죽박죽 넣어두는 바구니도 뒤졌다. 묵혀 있던 옷들에서 군내가 났다.


옷을 찾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곧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반팔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급히 선크림만 바른 채 가방을 집어 들었다. 급한 마음에 신발도 아무(하필이면 발등이 높은) 운동화를 신었다.


그새 살이 빠진 건지 아침에 진을 다 빼놔서 오장육부가 쪼그라든 건지 허리가 너무 커서 바지가 자꾸만 흘러내렸다. 뻣뻣한 소재의 와이드핏 데님과 발등 높은 운동화가 걸을 때마다 자꾸 부딪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이날은 하루 종일 바지춤을 추켜 올리고 최대한 운동화가 마찰되지 않도록 걸으려고 애썼다. 덥고 짜증 나는 날씨에 회사 일마저 원활하지 못해 기분이 개떡이 되었다. 아마 내 표정은 더 개떡 같았을 거다.



퇴근 후, 씩씩 거리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드레스룸으로 직행했다.


일단 문제의 티셔츠부터 찾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매의 눈으로 옷들을 일일이 앞뒤로 들춰보기도 하고(옷걸이에서 떨어진 채 방치된 옷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또한 그날 알았음) 떨어진 옷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수색에 나섰다. 20분쯤 지났을까? 그 옷은 구석에 반쯤 벗겨져서 팔 한 짝이 축 쳐져 있는 재킷 속의 자주 입지도 않는 가디건 안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마트료시카처럼 꺼내고 꺼내야 나오는 녀석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드레스룸을 둘러보았다. 1타 3피의 신박한 정리? 가 무색하게도 여전히 숨 막힐 듯 빽빽했다. 다들 그 모습 그대로 제 자리에 걸려 있었지만 더 이상 내가 애정하는 물건들이 아닌, 거적때기로 느껴졌다.


기쁨과 행복이 샘솟던 공간이 하루 사이에 갑갑하고 거북한 곳으로 변해있었다. 설렘은커녕 옷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졌다. 이 물건들을 죄다 들고 이고 모시며 살았다는 생각에 어깨가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옷들마저 공간이 너무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옷이 또 비집고 들어오면 그때는 참지 않겠다는 경고장을 날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옷들의 공격이 시작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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