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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Oct 21. 2023

옷은 모두 걸어서 수납합니다

미니멀라이프 옷 수납법

나는 손끝이 야무지지 못하다. 오죽하면 어릴 때부터 엄마가 "네 손에는 가시가 달린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을까?


야물지 못한 손은 정리정돈마저 서툴게 만들었다. 애써서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도 성의 없이 툭 얹어 놓은 듯 삐뚤빼뚤하고, 이불을 갤 때도 손이 알아서 모서리를 맞추지 못하니 세모눈을 뜨고 집중해야 한다.


옷 정리도 마찬가지다. 정리정돈의 달인들은 서슴없이 탁탁 접어서 가지런히 착착 수납하던데, 가시 달린 손은 그 쉬워 보이는 것에 부단히도 헤맨다. 양쪽 어깨의 수평을 맞추고, 소매 끝을 단정하게 포개고, 몸판을 나란하게 접어내는 것이 이리도 힘겨운 일이란 말인가? 어릴 시절 종이 접기에 유난히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접는 것에는 영 재능이 없는 것이다.


가시 달린 손이라도 미친 듯이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참에 눈물겨운 인생 역전기를 써 내려가는 거다. 하지만 생각보다 인생은 짧다. 차라리 그 시간을 내가 더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쓰는 것이 실용적, 정서적 측면에서 훨씬 낫다는 말이다. 그러니 못 하는 것에 애쓰지 말기로.


단점을 온전히 수용하고 나니, 나에게 딱 맞는 옷장의 형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정리정돈을 최소화하는 수납이라면 가시 달린 손이라도 흔적이 남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작은 에너지만으로 옷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옷을 고를 때 시간을 들여 고민하지 않으며, 수납할 때도 쓸데없는 힘이 들지 않게 된다.


종합해 볼 때, 궁극의 솔루션은 모든 옷을 걸어서 수납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 방법은 옷 아래 공간을 빈 상태로 두기 때문에 그만큼 공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횡'으로만 나란히 수납함으로써 공간을 더 잡아먹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정리정돈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에 더 주목했다. 그 이유로 공간 효율성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옷 아래 빈 공간에 수납박스를 두고 얇은 옷이나 모자, 스카프 등을 넣는 방법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걸린 옷을 넣고 뺄 때마다 박스에 스치거나, 기장이 아예 긴 옷은 박스에 닿아서 아랫단에 자국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옷을 걸어 놓기 귀찮은 날에는 박스에 대충 얹어 놓을 공산도 큰 데다 박스 안의 물건들이 한 데 엉켜서 섞여 버릴 가능성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 익숙해지면 그대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간 활용을 꿈꾼다면 정리정돈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으른 데다 손 끝마저 야무지지 않은 나에게 있어 "정리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삶의 형태가 아니었다. 자신이 없다면 비어 있는 상태로 놔두는 것이 옳다.


모두 걸어서 수납한다는 건, 공간의 한계가 확실한 조건이다. 그만큼 물건의 개수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므로 답답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제약이 있는 시스템은 오히려 비움을 향한 나사를 더 조일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덕분에 필요한 물건들을 엄선해 감당 가능한 만큼으로 개수를 줄일 수 있었다. (더 비우고 싶지만 옷 쓰레기 영상을 본 후 무작정적인 비움은 일단 멈췄다. 최대한 알뜰히 입어주고 난 후에 천천히 배출할 생각이다)


이제 4계절 옷들이 한눈에 보이는 옷장이 완성되었고, 옷은 옷걸이 하나당 하나씩만 걸려 있다. 서랍이나 수납 박스를 사용하지 않기에 옷을 꺼내 입을 때마다 구김에 신경을 쓰던 에너지 낭비는 저절로 삭제되었다. 옷걸이 하나에 옷을 2~3개씩 걸어두지 않으니 옷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다가 지치는 날들과도 작별할 수 있게 되었다. 미니멀 옷장을 꾸민답시고 원목 옷걸이나 심플한 '미니멀용' 옷걸이를 들이지 않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꾸밈없이 솔직한 옷장이 만족스럽다.


가짓수가 많지 않은 데다 계절별, 또는 상하의 별로 자리가 정해져 있기에 찾는 것도 수월하고 수납 또한 어렵지 않다. 가시 달린 손이라도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드디어 옷장 정리정돈에서 해방되었다.

나의 4계절 옷장

좌충우돌 초보 미니멀리스트의 옷장 비움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께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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