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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Oct 01. 2023

'미니멀'은 모르겠고, '라이프'를 하고 싶어

자극의 최소화

다운 사이징을 결정하면서, 옷장 정리는 자연스럽게 물건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물건 범위도 넓고 공간도 다양한 탓에 비움의 속도는 더뎠으나, 설렘의 정도를 가늠하는 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릇장에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흘러들어온 그릇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당신들이 사은품으로 받았다며 주신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직접 선택하지 않은 이 물건들에 전혀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플라스틱 반찬통은 냄새 제거가 어려워서 사용하지 않는다. 툭하면 바닥에 눌어붙는 낡은 프라이팬은 주기적으로 교체해주어야 함이 옳다. 기준이 명확하기에 남길 것과 내보낼 것을 구분하는 작업은 수월했다.


다만, 빨리 해치우겠다는 마음만 앞서서 달려들지는 않기로 했다. 의무를 지우지 않기 위해 1일 1 비움이나, 하루 15분 정리습관 등은 애초에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 그냥 트라이얼이다. 하다가 안되면 안 해도 된다는 마인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이라는 선긋기는 자칫 나를 완전히 이쪽 세계의 프레임에 가둬버리곤 하는데, 사람 마음이 어찌 그리 무 자르듯 잘릴 수 있겠냐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가끔은 저쪽 세계를 기웃거리고 싶을 텐데 무조건 이쪽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러한 속박은 나 자신과의 싸이 된다. 물건과 싸우기 싫어서 선택한 것이 결국 나 자신과 싸움이라면 멈추기로 했다. 진정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침구 정리가 그랬고, 요가가 그랬다. "에너지 레벨이 적정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 지금이야!라는 신호가 온다. 이때의 내 몸은 알아서 가벼워진다. 이 타이밍에 만족감을 느끼는 경험을 쌓는다. 경험을 지속하다 보면 매일 하는 습관으로 정착되어 버린다. 습관이 되면 굳이 컨디션을 따져가며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컨디션을 고려해 스스로 레벨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건 비움과 정리 역시 하다 보면 몸에 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야 할 일로 정해서 실천한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규칙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만족감이란 일종의 청량감과 같은 계열이다. 개운하고 후련하다는 말로는 전부 다 표현되지 않는 느낌으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에 가깝다. 이는 맑고 쾌청한 날,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길을 걷는 것과 같은 맛이다. 몸에 에너지가 돌면서 앞으로 맞이하게 될 하루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에 부풀게 된다.


내 경우 공간의 청량감은 여백의 넓이에 비례한다. 다만 물건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삭막함과는 다르다. 물건들은 느슨한 밀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칼 각을 맞추거나 줄을 나란히 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에 나 혼자 타고 있다면 적막할 뿐이지만 드문드문 네댓 명쯤 앉아있을 때면 한산한 운치가 느껴지곤 하는데,  내 집의 공간에서 원하는 정도는 딱 거기까지다.




이쯤되면 "당신은 미니멀리스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일상은 미니멀라이프와는 거리가 멀다.


미니멀라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집, 즉 늘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으며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집을 유지하는 사람이 미니멀리스트의 기준이라면 보나 마나 예선 탈락이다. 우리 집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23.8시간(나머지 0.2시간은 청소기를 돌려서 잠시 없어진 상태) 굴러다니고, 매일매일 반짝반짝 빛나는 욕실은 기대하기 힘들다. 빨래는 밀리기 일쑤고, 옷은 개어 놓기 귀찮아서 반나절씩 안마기 위에 쌓아두기도 한다.


조금 더 관대하게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유지하는 사람"이라 정의된다 해도 그렇다. 툭하면 옆길로 새어버리는 성향 때문에 자격 미달이 될 것이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물건은 여전히 많고(비우고 또 비워도 그렇다), 관심 분야도 다양해서 잉여로 버려지는 시간 또한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더러는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시간들로 하루가 채워지기도 한다. 일어나자마자 축구 영상부터 검색하고 도서관에 가서 계획되지 않았던 분야의 책을 두 시간 동안 읽고 와서는 저녁밥을 차리느라 허둥대는 모습은 결코 평화롭지도 단순하지도 못한 것이다.



다만 곳곳이 난잡하게 흐트러진 공간은 산만함을 배가 시키고, 무질서하게 쌓인 물건들은 안 그래도 정신없는 머릿속을 더 어지럽힌다. 이들이 나를 해치는 것도,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연속 KO 패를 당한 사람처럼 만신창이가 되곤 .규칙 없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자체가 나에게는 부정적인 자극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자극은 에너지를 앗아가거나 무기력한 하루를 만들게 된다. 이는 예전의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휴식한 것 같지 않았던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 충전한 에너지가 나 이외의 다른 요소들로 인해 방전 돼버리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다. 따라서 자극을 최소화하는 것은 나에게 맞는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는 방법이요, 더욱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방패가 된다. 자극을 줄여 간결함을 유지하는 미니멀리즘적 방식은 나에게 맞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한동안은 미니멀리스트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하지도 못하면서 미니멀라이프를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한 적도 있다. 억지로 정체성을 그쪽에 끼워 맞추느라 애쓰는 것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삶은 아직 미니멀 라이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의 또한 워낙 다양해서 어느 쪽에 맞춰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더 적은 것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 소유로부터의 해방,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남기는 습관일 수 있겠으나,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질 뿐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늘상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니멀라이프에서 중심은 미니멀이 아닌, '라이프'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니멀의 개념은 여전히 난해하니 애써 고민하고 싶지는 않다. 미니멀은 모르겠고, 나의 '라이프'를 고 싶을 뿐이니까.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모든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는 기술이야말로 우리 위대한 인간들이 지닌 에너지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J.A. 해드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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