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크기는 곧 사랑의 크기라는 생각에, 온 우주에 닿을 수 있도록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날 만들어진 우리만의 유니버스는 평생 갈 줄 알았다.
사랑은 늘 설레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지금도 가끔은 심장이 나대는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말대로, 사랑 타령만 하다가는 사랑에 베인다.
혼인 신고서에 도장 하나 찍었을 뿐인데,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자 해도 돌아오는 건 차갑게 날이 선 눈빛뿐, 행여 날 사랑하냐고 물으면 여전하다고 대답했지만 확실히 처음 느낌 그대로는 아니었다. 남편의 말이며 행동이며 심지어 방귀 냄새까지 모두가 변한 것 같았다. 그가 느끼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지모르겠다.
사랑만으로는 안된다고 느낀 건결혼이 곧 현실이 될 수밖에 없는 3단 콤보에 직면하면서부터다.
우선 결혼과 동시에 평생 몰랐던 사람들과 강제적으로 가족의 연이 맺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된 이 사람들이 성격이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해 죽겠는데, 더 미치겠는 건 그들의 직계인 나의 배우자조차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긴, 나 역시 우리 부모님을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았다.
태어나 보니 당신들은 나의 부모였기에 객관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는 걸 판단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당신들의 봄과 겨울, 낮과 밤, 명과 암을 모두 보아 온 터이기에 장점이 불현듯 단점이 되고, 사라졌던 단점이 또다시 튀어나오는 날들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남들이 보는 단편적인 당신들과 내가 경험한 입체적인 당신들의 모습은 엄연히 다를 텐데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이미 익숙하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배우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할 노릇인가. 직접 경험하면서 파악을 해야 하는데 이미 친한 사이에 끼어든 이방인처럼, 때로는 그들만의 우주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들이 들이닥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다 꺼내서 빅데이터를 돌려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 지극히 주관적인 상황이다. 상처받고 부서지고 깨질 수밖에 없다. 다시 주섬주섬 꿰매고 쌓아 올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전히 날 사랑한다는데 제 식구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은 배우자로 인해 그 서러움은 배가 된다. 물론 해를 거듭할수록 나만의 데이터 베이스가 쌓이긴 한다. 그러다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조금은 편해지는 때가 온다.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슴없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불편하지 않다면 드디어 나도 그 별에 정착한 것이다(나는 여전히 정착 중이지만).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생명을책임지는 숭고하고도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되는 것이다. 애는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 상부상조하며 이웃집 아이들을 서로 챙겨주던 응답하라 1988 시대에나 먹히는 소리일 것이다. 날로 복잡성을 더해가고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서 아이 한 명을 키워내는 데에는 멀티 플레이어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먹고 입는 것에 대한 수준이 높아진 만큼 뒤처지지 않는 경제력은 필수인 데다 아이 성향에 맞는 육아법까지 요구되고 있는 요즘이다. 학업 성취, 학교 생활, 교우 관계, 성격 파악 등 모든 면을두루 살펴야 한다.
최근 들어 아이 없이 부부 중심의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가정이 증가하는 추세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하지만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면, 그리고 낳게 되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히 부모의 몫이다. 이때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의무가 지워지면 안 된다. 두 사람 모두 심신이 건강하다면 동업자의 정신으로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해야 한다.
사실, 말이 쉽지 합리적으로 역할을 나누기란 정말 어려워서, 종종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래도 외면하는 것보다는 울고 불며 싸우더라도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지속하는 편이 100번 낫다는 지론이다. 진심은 서로를 바라보아야비로소 전해질 테니까.
게다가 결혼 적령기라 일컬어지는 30대 이후, 사회적으로는 한창 성과를 내고 입지를 다져 나가야 할 시기다. 직장 생활 N년 차라는 수식어는 나도 모르게 책임감을 부여한다. 업무를 다 마치지 못했어도 약속이 있다며 쌩하고 퇴근해 버렸던 주니어 시절과는 태도부터 다르다. 달라진 나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다.
연차가 쌓이면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 일도 그만큼 많아진다. 매년 1월 2일, 시무식을 마치고 서로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나누지만, 눈치코치 만렙이 된 대리, 과장급은 이미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 회사에서의 "복"은 곧 "일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안 그래도 당장 보고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야근도 불사하는 마당인데 6시가 다 되어갈 무렵, 상사는 오늘 술 한잔 하자며 접근해 온다. 일단 수비벽을 쌓아본다.
"내일 보고 건이 있습니다만."
상사는 보고는 오후에 천천히 해도 괜찮다며 관용을 베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야 현타가 온다. 'IC, 또 당했어.' 다음 날 아침, 술이 덜 깬 상태로 첫차에 오른다. 비즈니스적인 신뢰 쌓기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 회사에 충성하는 삶이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결혼이 곧 현실이라 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깔아뭉개거나 필요 없다고 치부하진 말아 주길 당부한다. 다시 말하지만 부부의 근간은 사랑이고, 나 역시 늘 사랑받고 싶고,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랑이라는 놈이 남녀 간의 화학적인 사랑에만 머물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그 콩깍지 위에 인류애적인 사랑을 살포시 얹어주어야 3단 콤보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물론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는 없다. 세상만사에 노력하지 않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궤도에 다다를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견뎌주길 바란다. 한 고비씩 넘다 보면 지혜는 덤으로 따라온다. 비슷한 일이 생겨도 해결이 쉬워진다.
인류애는 배려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받은만큼 나도 해줘야겠다는 역지사지의 정신 말이다. 일종의 Give & Take관계라 할 수 있다. 부부 사이 역시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은 계약 관계 아닌가.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매일 함께 삶을 영위해야 하는 동업자 관계다. 비록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더라도 가사, 육아, 가족 행사나 문제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기에 가정 내 삶 역시 수많은 "일"들의 연속이다. 즉, 현실에서 부부는 "일로 만난 사이"인 것이다. 따라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캐미가 흐트러질 경우 팀 플레이에 균열이 난다. 주고받는 균형이 중요하다.
남녀 간의 사랑은 어떻게 하냐고? 부부는 늘 함께 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넣어두고 결정적일 때 꺼내도 괜찮으니까.
16년 전 결혼식으로 돌아가, 손을 맞잡은 우리에게 주례사를 전해본다.
"영원히 사랑하세요. 그리고 부부 사이에는 일방적인 Giver도 일방적인 Taker 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균형 잡힌 가정을 꾸려 가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