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반자동으로 나왔던 대답은 "OO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회사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제 자신도 성장해서 꼭 필요한 인재가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진부하고 식상한 단어의 나열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적절할 지 몰라 기계적으로 떠들었던 것 같다.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오히려 이 쪽에서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목구멍이 간질거리기도 했다. 그러는 당신들은 5년 후에도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라 자신할 만큼 미래를 설계하고 있냐고 말이다. 물론 그 말을 진짜로 했다면 면접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겠지.
그들은 단지 매뉴얼화된 질문을 읽어나갔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나는 먼 미래를 미리 계획하고 사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끔 유튜브나 블로그를 볼 때면 "이야~"하고 탄성이 나올 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다이어리엔 아침엔 그날의 계획이, 저녁엔 감사와 반성의 일기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를 루틴으로 만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날의 To Do 리스트는 물론, 매일 기록하는 것 또한 실천 목록이 되는 셈이다.
그들의 대다수가 지향하는 삶은 성장과 발전이었다. 그리고 마음속 밑바닥에는 자신이 그려왔던 꿈이 있었다. 꿈의 형태는 미래에 이루었으면 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구체적으로는 3년 후 또는 5년 후의 비전이 있었고, 이는 더욱 잘게 쪼개어 올해의 목표 또는 이달의 목표와 같은 명확한 청사진을 그려냈다. 그들의 하루는 차근차근 그곳에 다다르는 과정이었다. 매일의 계획과 실천, 리뷰를 통해 서두르거나 채근하지 않고 묵묵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껴졌다.
나도 그들을 쫓아 성취하는 삶으로 가볼까 싶다가도, 이내 "섣불리 흉내 내지 말자"라는 다짐으로 돌아왔다. 나를 알면 알 수록 계획대로 살기 어려워하는 유형이라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근사한 타인의 외모나 스타일을 따라 한답시고 내 고유의 개성까지 지운다면 나를 잃어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삶의 형태가 훌륭해 보인다고 나의 성향까지 무시하며 따라 해봤자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OO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 '월 수입 OOO원을 찍겠다'라는 포부처럼 구체적인 삶의 목표는 없다. 그러나 꼭 말해두고 싶은 부분은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만은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획이 뚜렷하지 않다고 해서 인생을 만만히 보며 시간을 흘려버리고 싶지는 않다. 선명한 꿈은 없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은 그득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부담은 주고 싶지 않다. 이루기 위해서 갈아 넣어야 한다고 채근하는 것 또 원치 않는다. 그저 불쑥 찾아오는 행복을 자주 알아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남편과 나는 가끔 5년 후에 우리는 무얼 하고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5년 후의 목표도 없는 주제에 상상은 해보는 것이다. 상상은 자유니까. 그때마다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은 "지금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시한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하찮은 것에 낄낄 대는 모습"이다. 이렇게까지 철이 없어도 되나 싶어 귀엽기까지 하다.
남편 역시 먼 꿈을 위해 애쓰며 나아가는 쪽이 아닌, 오늘을 즐겁게 사는 삶을 지향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명예나 지위를 가진 무엇이 혹은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은 당연히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 둘 다 참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채찍질하지도 않으면서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을 함부로 탐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본디 게으른 유형들인지라 둘 중 한 사람이 슬슬 나태해지려 시동을 거는 순간은 있다. 그럴 때마다, "목표 없는 삶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내일이 없는 삶을 살면 안 된다"며 궁둥이를 걷어차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