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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미워하되, 학생은 미워하지 말라

먹튀, 정직, 인사

by 소소라미

"저 다음 주부터 안 나와요."

"엥? 왜?"

"다른 학원으로 옮겨요."


원장실로 들어가 바로 퇴원 보고를 했다. 그녀는 땅속까지 뚫을 기세로 한숨을 쉬더니 이내 폭발하듯 소리를 질렀다.

당장 어머니한테 전화하세요!

이 학생은 해당 월에 수강료를 납부하지 않아 장기 미납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셔틀비용만 납부했다.


납부 기한으로부터 2주 지난 시점부터 어머니께 지속적으로 전화를 보내고 문자까지 전송했으나 전혀 응답이 없었다. 반면 학생은 꼬박꼬박 학원에 출석했다.


개의 경우 미납과 결석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인데, 이 학생의 경우는 반대였.


사실 월초에 미납자로 뜰 당시만 해도 이렇게 골치를 썩게 될 줄은 몰랐다. 5년 가까이 다닌 장기 재원생인 만큼 그의 부모를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또한 학생 특이 사항 기록란에는 '어머님이 바쁘셔서 전화를 잘 안 받으심'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기에, 데스크팀과 원장 모두 이번 달에는 특히 바쁘셔서 결제를 못하고 계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원장은 학생이 퇴원 의사를 밝힌 날부터 매일 출근하자마자 학부모와 통화를 시도하고, 부재중 기록까지 관리할 것을 지시했다.


5일 차쯤 되었을까?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사를 건네기가 무섭게 거센 폭포수처럼 말이 쏟아졌다.

저는 돈 다 냈으니 다시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너무 바쁘니까 이따가 5시에 전화 줘요.


뚜뚜뚜...


그날따라 많은 이슈가 겹치면서 5시에 전화하지 못했고, 6시쯤 전화하니 역시나 부재중이었다. 수강료는 여전히 미납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날부터는 학생에게도 문자를 전송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며칠 더 지나 익숙한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매일같이 전화를 돌렸기에 전화번호 뒷자리를 이미 외운 상태였다.


학생 어머니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그날 5시에 다시 전화 달라고 했는데 왜 그때 전화 안 하고 매일 귀찮게 해요? 아 진짜 열받아 죽겠네!


내가 대답하려 하자, 그녀의 톤은 한층 더 높아졌다.

일단 내 말 먼저 들어요. 내가 당신들한테 빚졌어요? 수강료 냈으니까 똑바로 확인부터 하라고요. 그리고 왜 애한테 문자를 보내요? 애까지 상처받게 할 거예요?


"저 어머니 일단 진정하시고요. 학생에게 연락해서 마음 상하게 한일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수강료는..."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해도 안 받을 거니까.


뚜뚜뚜...


그녀는 아들이 받았다는 상처를 나에게 고스란히 돌려다. 잘못은 상대방이 했는데 욕을 먹은 것도 모자라 사과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분노와 모욕감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도 대거리를 하고 싶었다. "너 빚진 거 맞고 그렇게 그렇게 억울하면 네가 돈을 냈다는 걸 증명해!!"라고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이미 작정한 상태에서 이 악물고 싸워가며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얼까를 생각해 보니, 맞설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괜한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얼른 털어버리자.


다만 그녀가 부모로서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녀가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이끌게 마련이다. 부모는 이를 훈육이라 하고 자녀들은 잔소리라 일컫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 뿌리는 같다. 물론 부모라고 해서 완벽할 수는 없다. 자신을 통제하고 참아내는 훈련을 거듭하며 본이 되려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나의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납된 수강료는 결국 손실 처리되었다.


사실 그 학생은 오래전부터 같은 층에 있는 수학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후에도 그 학원에는 계속 출석하는 듯했다. 복도에서 학생을 봤다는 목격담이 심심치 않게 전해졌고, 머지않아 나 또한 목격자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변함없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꾸벅 인사하는 그를 보며, "다행히 상처받지는 않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생판 얼굴도 모르는 네 어머니는 먹튀녀로 남겠지만 너는 그냥 학생으로 기억할게.

학생까지 미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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