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개업하기 한두 달 전 우연히 남편 직업을 커밍아웃하게 되었다.
"지금 집에서 놀아요"
누군가가 질문을 한 건지 아니면 내가 다른 이야기 하다가 스스로 말해버린 건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내 입으로 논다고 말한 것과 팀에서 가장 눈이 큰 동료의 눈이 더 커진 기억은 또렷하다. 마침 코로나 영향으로 우리 회사에서도 명예퇴직, 조기퇴직, 희망퇴직 등 이름만 여러 개이고 목적은 하나인 퇴직 칼바람이 불고 있었기에 심심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냥 백수로 알고 있게 놔둬야 하나? 창업 준비 중이라고 말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숨길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직장 생활에 절대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확답을 받고 동의해준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는 공사를 칼 같이 구별할 자신이 있었다. 내 남편이 적어도 거짓말쟁이는 아닐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만화카페 준비하고 있어요. 버킷리스트라나 뭐라나. 몇 달 전에 14년 다니던 회사 때려치웠어요."
반응은 대략 둘로 나뉘었다. 물론 후자를 직접 말로 한 사람은 없다. 표정이 말해줬을 뿐.
남편분 진심 부럽다. 모든 직장인의 소망은 멋지게 사표를 날리고 꿈을 찾아 떠나는 당당한 퇴사 아닌가.
이 시국에 창업? 대표님 바짓가랑이가 아니라면 회사 기둥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할 마당에 퇴사라니.
그 이후 전자의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수시로 만화카페 창업기를 궁금해했다. 어디에 차리는 건지, 프랜차이즈 상호명은 무엇인지, 심지어 무슨 라면을 파는지도 물었다.
개업일에 연차를 내겠다고 했을 때도 전자에 해당하는 이들은 또 한 번 눈을 반짝였다.
"가게 개업 잘하시고, 후기 좀 많이 알려주세요."
하지만 나는 주말 알바 동원기를 영원히 말해주지 않았다.
비밀을 봉인해 둔 사연
첫 번째 이유는 그즈음 퇴직한 직원에 대한 뒷 이야기 때문이었다.
부서 이동으로 팀에 합류한 분이라서 함께 일한 시간은 6개월도 채 안되지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수술을 하고 휴직을 했다. 이후 복직했지만, 한 두 달 만에 퇴직했다. 본인이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주진 않았기에 나도 물어보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의연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멋지다고만 생각했다. 그분이 떠난 후 들은 바로는, 건강이 나빠져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기에 무리였던 와중에 남편이 자영업을 시작했고, 몸 회복하면서 남편을 돕고자 퇴직했다는 이야기였다. 몸이 아파 고생하는 걸 옆에서 보아온 나는 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세상은 넓고 어이없을 무(無) 상사는 많다지만 내 조직장이 그런 부류인 줄은 그때 알게 되었다.
그분의 남편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아파서 쉬다가 돌아온 사람을 두고 남편이 자영업을 시작하면 회사에 집중해서 일할 수 있겠냐고 반응했다는 거다.
그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회사의 가치가 더 크면 회사에 더 기여할 거고,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알아서 결정하겠지. 그걸 왜 예단하지? 자영업을 시작한 남편을 둔 입장에 몰입이 되어 순간 욱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단 이곳에서 월급을 받는 이상 만화카페 땜빵 알바는 탑 시크릿이야. 굳이 선입견을 만들지는 말자.
두 번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가게를 오픈할 무렵 나는 회사에 내 자리를 만들고 인정받기 위해 영혼이라도 사 와서 갈아 넣을 기세였다는 거다. 이에 막 리더가 된 신입 팀장과 은근한 기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직업으로 인해 내가 지장 받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하던 시기였다. 팀장한테 만화카페 알바를 들키면 싸움에서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더 좋은 퍼포먼스로 그 윗선인 상무한테 인정받아서 당신이 나를 맘대로 통제하기 못하게 만들겠다는 알량한 자존심도 있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시기였다.
세 번째 이유는 방학이 맞물린 오픈 프로모션이 종료되면 손님도 감당할 수준으로 유지될 거고, 주말 알바도 계속 뽑고는 있으니 동원될 일은 곧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웅담도 아니고 오픈 시기에 잠깐 도왔던 것을 굳이 말해서 화제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바로 코로나 단계 격상으로 남편 혼자도 운영 가능할 만큼 손님은 반의 반으로 줄었고, 주말 알바도 구하긴 했다. 빈번하게 교체되면서 땜빵은 계속해야겠지만.
코로나 정부 시책으로 음식점 영업 규제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할 무렵, 전자에 속했던 동료가 물었다.
"남편분 매장은 잘 운영되고 있나요?"
"네, 손님이 줄긴 했는데 덕분에 남편 혼자서도 운영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말 그대로 주중에는 남편 혼자 가게를 보게 되었고, 나름 잘 적응하고 있었다. 다만, 주말에 남편 혼자는 무리라서 알바가 필요했는데, 수시로 펑크가 나는 바람에 매장에 나가야 했다는 점이 사실과 다르다. 손님이 줄었으니 설거지 머신, 설거지옥과 같은 스펙터클한 이야기는 한동안 존재하지 않았고 피크타임 때에만 잠깐씩 도왔다. 무리 없는 이중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