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으로 돌아가는 마법의 주문
N잡러 신데렐라
다시 시작된 월요일, 내 직업은 회사원으로 돌아왔다. 몰래 간 무도회장에서 대스타가 되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안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신데렐라의 마음이랄까? 나는 설거지 대환장 스타였지만 어찌 되었든 출근에 임해야 했다. 어제 남편과 마감을 끝내고 12시에 들어왔으니 신데렐라와 시간마저 같았다. 신데렐라는 왕자랑 춤이라도 췄지. 나는 뭐야.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아 근데, 신데렐라도 평소 안 신던 신발을 신고 놀았으니 다리는 꽤나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20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면서 갈고닦은 건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출근 준비를 할 수 있는 스킬이다. 씻고 나와서 옷 입고 화장하는 데까지 20분이면 끝난다. 이 때는 여름이었고 머리 길이는 말리기 편한 중단발이었다. 옷도 면티에 리넨 바지나 스커트만 입으면 되니 준비는 더 빨랐다.
문제는 그나마 몸은 출근을 기억하는데 영혼이 돌아오지 않는 거였다. 라면들이 중구난방 놓인 선반, 컵 뚜껑, 홀더, 빨대 등 부자재 상자들이 어질러진 팬트리가 걱정되었다. 떡볶이 재고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아 그리고 포스기는 이 순서대로 찍는 거고, 인당 계산할 때는 금액을 먼저 찍어야 하고.
직장인 생명수로 출근 스위치 On
라떼를 사들고 사무실에 도착할 즈음에야 영혼도 겨우 출근 모드로 돌아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책상에 앉자마자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화요일 아침 9시로 예정된 회의 자료를 여태 시작도 못했다는 사실을 마주해버린 것이다. 해외 사업부 데이터를 분석하고 현지어로 작성해야 하니 매번 시간이 두 배로 걸리는 일이다. 야근 예약이다.
그날 오전에는 생각보다 주말 알바 후유증이 덜해서 만만하고 거뜬하다 싶었다. 그래 난 아직 젊어! 하지만 시어머니는 말씀하셨지. "아기가 안 운다고 우리 애는 순해요."라고 입방정 떨지 말라고.
맞다. 입방정이었다. 3시 이후 영혼의 유체이탈이 시작되었다. 내일 회의자료 준비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모자랄 판에 졸고 앉아 있다. 일단 여직원 휴게실로 피신해보자. 1번 칸으로 들어가 커튼으로 사방팔방을 막고 눈을 감았다.
헌데, 잠이 스르르 오기는커녕 왜 갑자기 말똥말똥한 거지. 아차차. 이성이 잠들지 못했기 때문이군. 수년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려 온 나는 몸과 감성은 이미 피곤한데 이성이 깨어 있어 잠들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눈앞에 내일 해야 할 일들이 날아다니고 무언가 실수는 안 했는지 보고자료가 미흡하진 않은지 자꾸 생각하려 했기 때문이다.
다시 커튼을 걷고 나온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사들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정신 차리자. 이후 정신은 차렸나 보다. 회의 자료 준비를 마치니 8시가 훌쩍 넘었다.
지금 출발. 가족 톡방에 메시지를 날렸다.
아이들에게는 6시쯤 연락해서 퇴근이 늦을 것 같으니 아빠 가게로 가서 밥을 먹고 있으라고 해두었다. 나도 매장으로 향했다.
어제 갔던 무도회장으로 다시 출근
9시쯤 도착하니 마감 준비는 시작도 안 한 상태. 미리 사들고 간 편의점 도시락을 대충 먹고 설거지를 도왔다. 주말에만 땜빵 알바한다 해놓고 이렇게 선을 넘는다. 토끼라고 하기에는 많이 컸지만 어쨌든 토끼 같은 자식들 데리고 영업 마감 시간 10시에 딱 맞춰 문 닫고 가려면 후딱후딱 정리를 돕는 게 효율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애초에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건가? 10시에 알바생이 퇴근한 이후에도 우리 4식구는 매장에 있었다. 손님들이 머무른 공간 곳곳에 쓰레기와 함께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들이 남아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 처리와 책 정리도 해야 했다.
그나마 저녁밥을 미리 챙겨 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는 주문을 걸어야 하는 건 불행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