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첫날은 금요일이었고, 연차를 냈다. 오픈 빨은커녕 양가 가족들만 와글와글 댔고, 오후 2시까지도 손님은 없었다. 사모님 코스프레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남편이 만들어준 라떼를 쪽쪽 빨며 이것저것 간섭해봤다.
"음, 안쪽 인테리어 잘했네."
"높은 곳까지 책이 있으니 사다리가 필요할 것 같아."
"손세정제는 이쪽에 놓는 게 좋겠어."
좀 있으니 슬슬 지겨워졌다. 손님도 없으니 난 일단 집에 가겠다 하고 나왔다. 걸어서 15분이면 집에 갈 수 있는 거리라서 왔다 갔다 하는 건 번거롭지 않았다.
저녁 7시쯤 아이들 밥 차려주려는데 전화가 왔다. 다급했다. 지금 나와달라 했다.
엥? 아깐 파리만 날렸는데? 뭔 일이래?
저녁 상을 차려주고 낮에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 같은 길이지만 낮에는 분명 사모님이었는데 밤에는 알바생이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했다.
눈앞의 광경은 설거지통에 중구난방 쑤셔 넣다 흘러넘쳐 바닥까지 점령하고 있는 컵들이었다. 음료는 일회용 컵에 제공하지 않고 컵에 뚜껑을 덮어 빨대를 꽂아서 내주기 때문에 회수를 하고 컵을 씻어야 한다.
그렇게 널브러진 컵이 설거지통에 60개, 바닥에는 40개쯤 되어 보였다. 진짜 알바생은 밀린 음료를 제조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남편은 밀린 음식을 만들어 대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일단 설거지통을 좀 정리하자. 설거지통이 꽉 차서 설거지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두 손 만세를 하고 닦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설거지할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컵에서 뚜껑과 빨대를 분리하여 분리수거함에 버리고는 컵들을 착착 쌓았다. 설거지 통에 숨통이 트였다. 일단 이거 60개를 먼저 닦자. 이후는 무아지경. 나는 로봇이다. 나는 로봇이다. 설거지 로봇이다.
깨끗이 씻긴 컵을 마른 행주 위에 착착 쌓아 나갔다.
아우 속이 후련하네. 다음은 바닥에 널브러진 컵 40개 차례.
앗 근데 옆쪽 개수대를 보니 음식 조리 도구들도 한가득이었다. TMI지만 설명을 하자면 만화카페에서는 라면, 떡볶이, 감자튀김, 볶음밥 등 음식도 팔기 때문에 주방 공간이 음식과 카페로 분리되어 있고 설거지통(개수대)도 두 곳이다.
남편이 주문받은 음식을 만들려면 저 조리도구들부터 설거지해줘야 수월할 듯했다.
2차전 돌입. 프라이팬과 라면 냄비부터 닦았다. 카페 알바 하다보니 알게 된 건데 음식 공간에서는 프라이팬과 냄비의 선순환이 중요하다. 개수가 무한대가 아니기에 그때그때 설거지를 해두지 않으면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이후 라면 용기, 빠에야 용기, 기타 접시 설거지 삼매경이었고 얼추 정리가 되었다.
다시 카페 쪽으로 이동. 남은 40개의 컵을 씻었냐고? 아니. 다시 또 20개는 더 늘어있었다. 화수분이야 뭐야? 설마 돈도 화수분처럼?
결국 어찌어찌 정리는 되었다. 매장 마감은 10시인데 시간은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와 드디어 끝인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의자에 앉았다. 일단 물 한잔 마시며 이미 늦은 타이밍이었지만 내 어깨를 걱정해봤다.
"이제. 쓰레기 정리하고 버려야 해. 이것 좀 도와줘."
남편이 말했다.
이런. 11시 넘기겠군. 설마 오늘을 넘기지는 않겠지?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나는 여름밤이었다.
그날 맥주를 먹고 잤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오픈 2일 차, 헤라클레스도 울고 갈 냄비의 무게
알바 사모의 가장 큰 장점은 출근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 정시 퇴근은 안될 수 있고, 협상을 좀 해야 한다. 가장 큰 단점은 시급이 0원이라는 건데, 겸업이 아니니 직장 취업규칙상 전혀 지장이 없는 굉장히 합법적인 조건이다. 다만, 사장(남편)과 알바생(나) 관계에서는 꽤나 치명적이고 다툼의 소지가 있는 문제였다(훗날 이 문제로 많이 다투기도 했다).
1시에 카페에 나가니 다행히 회수된 컵은 설거지통에만 있었고 전날보다는 모든 상태가 양호했다. 이 정도면 할만하겠군. 왔다 갔다 하면서 설거지 밀리지 않게만 해보자. 컵을 착착 쌓아 나갔다. 음, 착착 진행되고 있군.이틀 만에 완벽 적응이야. 역시 난 우등생이고.
그날 바로 알게 된 사실인데, 만화카페는 입장할 때 1시간, 2시간 등 손님이 원하는 시간을 등록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주말 1시면 아직 컵이나 음식용기들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은 타이밍이었다.뭣도 모르고 설레발쳤다는 얘기.
본격적인 회수는 2시부터 시작된다. 이 시간은 삼삼오오 손님들이 몰려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포스기가 놓인 카운터 주변에 들어오는 손님과 나가는 손님이 뒤섞여 장사진을 치게 되는 마의 시간대인 것. 컵과 그릇들이 밀려들었다.
카운터에는 진짜 알바생이 있었으므로 나는 설거지에 집중한다. 포스기를 쓸 줄도 모르고 메뉴 교육도 안 받았으니 할 줄 아는 건 설거지뿐이기도 했다. 전날처럼 나는 설거지 로봇이다를 되뇌며 양쪽 개수대를 왔다 갔다 했다. 알바생은 카페 경력은 없지만 편의점 알바 경력 1년의 포스기 전문가였다.
전날과 다른 점은, 3시간 알바가아닌 9시간동안 그렇게 로봇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전날에는 오후 늦게에나 손님이 들기 시작했고 그날은 아침부터 손님이 오기 시작한 것도 달랐다.
컵은 양이 많아서 힘겨울 뿐 별 문제는 없었다. 복병은 냄비였는데, 전날에는 얘가 주인공이 아니었으니 잘 몰랐나 보다(컵 100개가 주인공). 이날 라면 주문량이 많았던 건가. 냄비를 씻어두고 컵 정리하고 돌아오면 또 쌓여 있고, 그새 내 직무로 배정된 신발장을 정리하고 돌아오면 또 쌓여 있었다.
문제는 빈도수와 무게의 곱셈 값이었다. 너무 무거워서 씻고 들고 정리하려면 어깨 팔 근육은 물론 없는 복근까지 동원해야 할 지경이었는데 마침 운동을 쉬고 있을 때라 계속할 걸 그랬나 뜬금없는 후회도 들었다. 설거지 로봇도 하중 한계는 있다. 빈도수가 곱해지자 내 어깨는 감당할 수 없다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본사는 뭐 이런 쓰레기 같은 냄비를 보급한 거야? 욕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억척스러운 아줌마다.
오후 타임에는 카페 알바 경력 제로의 조카들이 왔고 예상대로 대환장 파티는 이어졌다. 나 포함 3명이 포스기를 쓸 줄 몰랐다. 서로 눈치만 보다 잘못 만져놓고 사장님을 불러댔고, 사장님(남편)은 음식을 만들다 말고 카운터로 등판했다. 제대로 병목 구간이 생겼다. 그렇게 6시간을 더 일했는데 끝날 때쯤에야 내가 결제하는 방법이라도 배워서 뭔가를 했던 것 같다. 걱정 마시라. 제대로 계산은 해드렸으니.
자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차례. 그래서 돈은 좀 벌었습니까?
오픈 행사로 1시간 무료 이용권 쿠폰을 뿌렸고 SNS에 음식 주문 시 2시간 공짜 이벤트를 걸어서 방문자 수 대비 매출이 크지는 않았다. 결정적으로 사장을 포함한 모두가 초짜라서 메뉴 준비가 서툴렀고 간단한 응대나 이슈에도 우왕좌왕 허둥대기만 했다. 손발도 안 맞았다. 안 싸운 게 다행이다. 개발에 땀나도록 했는데 결론적으로 번 돈은 크지 않다.
돈이고 나발이고 냄비 때문에 아작 난 내 어깨가 걱정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돌덩이 같은 냄비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욕을 한 사발 퍼부었다.
집에 오자마자 냄비부터 검색했다. 가볍고 눈금선이 표시된 편수 냄비를 골랐다. 사는 김에 프라이팬도 가벼운 걸로 샀다. 냄비한테 가려져 그렇지 냄비 무게가 세계 챔피언이라면 프라이팬 무게도 아시아급은 됐다.
그런데 여태 밥을 안 먹었네.
남편이랑 라면을 끓여 먹었다. 냄비 때문에 라면도 싫어질 줄 알았는데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