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이 주말 알바를 해줘야겠어

오픈 7일 전, 이중생활의 서막

by 소소라미

평일 9to6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비록 야근한 날이 칼퇴한 날보다 훨씬 많기는 하지만 야근에 대해 하소연하려면 별도의 주제로 글을 써야 할 거다. 그러니 일단 9to6이라 해두자. 그리고 주말은 명목상 쉬는 날이다.


코로나 이 미친 바이러스가 세상을 개판으로 만들어놓기 시작할 즈음,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짜증 나고 힘든 마당에 남편까지 숟가락을 얹은 것. 180도까지는 아니고, 코로나가 90도, 남편이 60도 합계 150도 정도이려나? 난 분명 똑바로 서 있었는데 내 발 밑의 지구가 기울어져 버렸다. 덩달아 내 몸도 기울어졌고, 다시 똑바로 서기 위해 발의 각도를 150도가량 돌려야 했다.


덕분에 지극히 타의적으로 주말에는 평범한 회사원과 다른 일상을 살게 되었다. 회사에서 알게 된다면 불편해할 수도 있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이다.


'대외비'라면서 이렇게 대놓고 제목을 써도 되나? 잠시 고민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은밀하고 합법적인 이중생활"이라고 써두고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남편이 퇴사했다


남편은 지난해 초, 회식하고 새벽녘에 들어와서는 갑자기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술 처먹고 늦게 들어온 것도 괘씸해 죽겠는데 회사를 왜 그만둔다는 거야? 술주정도 가지가지네. 술 취한 개가 짖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자버렸다.


며칠 후 남편은 이번엔 멀쩡한 정신으로 또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집 사람개는 왜 이렇게 자주 짖는 거야?


남편이 격무에 힘들어했다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은 기억은 없었다. 그밖에도 회사 생활을 지속하지 않을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 상사나 동료들과 관계가 과하게 좋았고 14년간 지각 한번, 회식 불참 한번 없이 직장인 생활에도 충실한 남편이었기에 뭔 소린가 싶었다. 그래서 개가 짖는 소리라고 느꼈던 거다. 회사 생활을 버텨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면 남편보다 내가 먼저 그만두라고 권했을 테니.


만화카페 사장이 일생일대의 꿈이라고 했다. 이미 많이 알아봤고 결심도 했고 3월 말로 회사 생활은 그만두고 싶으니 동의해줬으면 한다 했다.


그래 해라.


마음을 결정했다는 사람 앞에서 반대할 명분은 없었다. 남편이고 가장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다. 40년 평생 꿈을 못 찾은 사람으로서 꿈을 찾은 사람이 부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만화카페 사모님이 되었다.


잠깐, 사모님이 아니고 알바라고?


만화카페 개업에 동의하면서 나의 직장 생활에는 절.대. 지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남편은 알바생을 두고 운영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을 했고 나는 가끔 카페에 들러 라떼나 얻어먹고 만화나 봐야지 했다.


는.. 개뿔


매장 운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중생활은 예고되었다. 개업일이 코앞인데 함께 심사숙고해서 뽑은 알바생 두 명이 갑자기 안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프로모션 전단이랑 SNS 광고까지 내놓은 상황이라 비상이었다. 오픈빨이라는 게 있을 텐데 주중 주말 각각 숙련되지 않은 알바 한 명씩이랑 남편이 모든 걸 커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급히 대학생 조카들에게 연락을 했고 다행히 주말에 일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 조카들은 카페 알바 경력 제로의 초초초짜였다. 결국 더 초초초짜인 나도 동원되었다.


당장 음식점 알바 필수 서류인 보건증부터 발급받았다.


문득 40살 넘어 알바생이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니 여사님인가? 아직은 알바생이라 불리고 싶은 나이.


훗날, 남편은 나를 "알바사모"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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