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평일에는 남편 혼자 운영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2020년 9월 개학과 함께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었는데, 매장 방문자 수가 한 번 꺾이고 두 번 꺾이고 세 번째 꺾일 즈음, 평일 알바생이 사장님 얼굴 보기도 죄송하다며 갑자기 그만두었다. 손님이 줄어든 건 본인 탓이 아닌데 자꾸만 죄송하다고 했다.
1년 간 춘하추동을 다 겪어본 이후 알게 사실인데, 번화가가 아닌 아파트들로만 둘러싸인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매장의 지리학적 특성 때문에 중고등학교 학사일정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3월 또는 9월이면 일제히 아이들도 학교로 돌아가는 시기라서 거리 자체가 한산해졌다. 방학 기간을 제외한 평일의 만화카페는 학생들이 오후에 학원 가기 전 핸드폰을 충전하거나 라면을 먹는 곳, 잠깐 오며 가며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공간이었다. 평일 낮에는 동네의 찐 만화 마니아 아저씨들이나 근처 병원 간호사들, 혹은 실례지만 직업이 뭐냐고는 차마 물어보지 못한 평일에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어른들이 여유롭게 쉬다 가는 곳이었다.
다만, 다양한 코로나 규제 실험이 이뤄지던 무렵 아주 짧은 기간동안 낮에는 주부로 보이는 분들, 저녁에는 성인 여성분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 있는 핫 플레이스였던 적도 있다. 매장 오픈 후 몇 달 안되었던 시기라 정확한 이유를 유추하기가 어려웠는데, 2주 후에 원인이 밝혀졌다. 주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만 영업 규제를 강화해 "매장 내 취식 금지" 정책을 적용하던 시기였고, 밖에서만 음료를 사 먹을 수는 없으니 만화카페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2주 후 규제가 풀려 그녀들은 모두 별다방으로 돌아갔다. 별다방의 매장 내 취식이 가능해진 날, 매출은 딱 치킨 한 마리 사 먹을 수 있을 만큼으로 줄었고, 우리는 치킨을 사 먹었다.
"길 건너에 ○○ 만화카페만 의식했는데, 알고 보니 별다방이 우리 경쟁자였어. 히히"
평일 운영 시스템의 붕괴
오픈빨 종료와 개학이 맞물리며 주말 전일 동원령은 진작에 해제되었고, 무리 없는 이중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사건이 발생했다. 평일인데 휴일인 날, 계약 사항에 명시되지 않았던 추석 연휴가 시작된 것이다(어차피 작성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다시 소개하자면, 본업은 회사원이고, 해외 사업부 관련 업무를 하며, 주말과 공휴일은 쉰다. 사장인 남편도 알바인 나도 이 부분을 꼭 기억해야 하는데,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점이 사장에는 유리했고 나에게는 불리했다.
추석 연휴의 경우 한국은 쉬지만, 해외 사업부는 휴일이 아니었기에 업무 지원 요청들이 들어왔고, 추석 첫날에도 노트북을 켜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치 운동회에서 콩주머니들의 영문 모를 쨉을 맞고 있는 박주머니와 같았는데, 화가 나고 열이 나서 곧 박이 터져버릴 것 같아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현수막을 보여줄까 수박은 씨발라먹어라는 현수막을 보여줄까 고민하고 있었다(휴일에도 회사 일을 해야 하는 이 주옥같은 시스템은 훗날 나의 내적 시스템 붕괴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어쨌든 그 당시의 나는 욕은 했지만 열심이었다).
남편은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는 매장을 연다 했고, 평일처럼 출근했다.
그날 따라 해외 지원 업무는 베베 꼬였으며, 아이들 밥도 제때 못 차려주고 박만 터지고 있었다. 결국 용기가 없어 현수막은 보여주지 못했다. 가끔 운동회에서 박은 터졌으나 현수막이 잘 안 펴지는 경우가 있는데 딱 그 꼴이었다.
2시에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남편 : 아침에 나가자마자 준비도 안 했는데 손님이 들어오더라고. 지금도 계속 와서 정신 못 차림.
나 : 일 마무리하고 3시에 갈게
결국 4시에 갔다.
평일의 휴일은 주말과 다름없었다. 알바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날의 알바는 나였다.
역시, 아수라장이었다. 설거지는 쌓여있었지만 엄두도 못냈다. 남편은 3시에 온다고 해놓고 왜 이제 왔냐며 눈으로 레이저를 쏴댔다. 아, 아까 못 보여준 현수막을 여기에서 펴야 하나 순간 망설였지만, 싸울 시간이 없었다. 음식 주문이 밀려서 남편은 계속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내가 카운터(포스)와 카페(음료 제조)를 맡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포스기에 익숙하지 않았고, 결제만 겨우 할 뿐이었다. 만화카페는 이용 시간을 입장 시에 등록하는데, 성인과 학생 요금도 구분되어 있고 음료 패키지 메뉴도 따로 있어서 입장 고객 응대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메뉴 이름과 버튼 위치도 헷갈리는 게 아니라 아예 몰랐다. 매번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손은 허우적댔고 내가 까먹을까 봐 입으로 메뉴 이름을 수차례 반복해 말했다. 카페 메뉴 또한 에이드만 조금 만들 줄 아는 수준이었고 프라페나 신메뉴는 아예 재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버벅댔다. 반쪽짜리 알바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바쁠 때 설거지랑 마감 정리를 도우러 나간 거지 일을 제대로 배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엔 카운터 전문 알바생이 있거나 남편이 왔다 갔다 하면서 봐줬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음식 주문이 밀려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붙박이 요리사로 활약해야 했다.
음료를 아예 안 시키거나 제조가 간편한 아이스티나 아메리카노를 선택하는 손님에게는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음료 선택을 고민하는 손님에게는 은근슬쩍 아이스티나 아메리카노가 그나마 빨리 나온다고 권하기도 했다. 눈치가 빠른 손님들은 용케도 그 메뉴를 시켜줬다. 은인이었다.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손님들이 한둘씩 빠지면서 가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다음날이 추석이어서 그런지 늦게까지 손님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남편이 말했다.
"3시에 온다고 했으면 3시에 와야지, 와줘서 고마운 건데 제시간에 안 오니까 화가 나더라고. 그럴 땐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4시에 오겠다고 해줬으면 좋겠어."
"응, 주옥같은 충고 고마워."
화 낼 힘조차 없어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또 평일의 휴일에 땜빵을 해주나 보자!라고 전의를 다졌다.
그날의 끝은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박 터졌던 날로만 기억되는 가을밤이었다.
P.S. 그 주 주말, 알바생이 다리를 다쳐 갑자기 출근을 못했다. 주말 내내 예정에 없던 전일 알바를 해야 했고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읍소하는 남편 얼굴을 보자 전의를 불태울 의지조차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