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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Dec 28. 2023

봄날은 간다.

知天命이 넘어서 느낀 지난 봄날의 정취

며칠 전 내린 비에 벚꽃이 다 졌다. 벚꽃만 꽃이 아니요, 꽃이 졌다한들 봄이 다 지나간 것은 아니건만 땅 위에 떨어져 해끗거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봄이 벌써 저무는가 싶어 못내 서운하다. 


봄은 백화(百花)의 계절이기는 하나 봄꽃의 백미는 역시 벚꽃이고 찰나의 아름다움을 뽐내다 찬연히 저버리는 것이 벚꽃의 묘미이기에 바람결에 흩날리는 벚꽃 잎은 과춘(過春)의 정취를 대변한다 할 수 있겠다. 


중국 당나라의 절창 시인 두보(杜甫)는 봄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曲江二首>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거춘    한 조각 떨어지는 꽃잎에도 봄은 지나가는데,

風飄萬點正愁人  풍표만점정추인    꽃비가 바람결에 흩날리니 어찌 시름에 잠기지 않겠는가.

且看欲盡花經眼  차간욕진하경안    봄을 마음껏 즐기려 하나 꽃잎은 눈가를 스치고 지나가니,

莫厭傷多酒入脣  막염상다주입순    어찌 몸이 상할까 두려워 술을 마시지 아니하리.

江上小堂巢翡翠  강상소당소비취    강가 오두막에는 물총새가 둥지를 틀었고,

苑邊高塚臥麒麟  원변고총와기린    부용원 황릉에 기린 석상마저 쓰러졌구나.

細推物理須行樂  세추물리수행락    세상 순리를 좇아 안빈낙도를 즐겨야지,

何用浮榮絆此身  하용부영반차신    어찌 헛된 영화에 이 한 몸을 얽맬 소냐.

    

참으로 아름다운 시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낙화를 바라보며 봄날을 지나 보내는 아쉬움을 구구절절 저리도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과연 두보는 시성(詩聖)이라 불릴 만하다. 


만개한 벚꽃


봄은 단연 청춘의 계절이다. 그런데 1,300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중국 시인의 시까지 인용해 가며 과춘을 아쉬워하는 것은 내 나이 이미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섰기 때문이리라. 


세월만 헛되이 흘려보냈지 나이 오십이 넘었다 해서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삶의 의미’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한 아둔한 인생이지만 이미 반백년이 지나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초로의 나이인지라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청춘을 그리워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지상정(人之常情) 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에게도 청춘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나날이었지만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 시절, 그 젊음이 더욱더 그립고 아쉽기만 하다. 젊은 날에도 봄은 오고 또 지나갔건만 그 시절엔 봄이 끝나도 별로 아쉬운 줄 몰랐다. 시간이 지나 해가 바뀌면 다시 찾아올 봄이었으니까…… 


물론 나이 든 지금도 올봄이 지나도 어김없이 내년이 되면 또다시 봄은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봄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나이 탓일 것이다. 


젊은 날에 봄은 설렘의 계절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봄이 오면 설레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김영랑 시인이 왜 봄을 ‘찬란한 슬픔’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는지 공감하게 되었다. 늙었다기보다는 그만큼 감정이 풍부해지고 성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올봄도 여느 해 못지않게 생동감 넘치고 화려하다. 그렇기에 이 봄을 지나 보내는 마음 역시 한없이 기쁘고 또 서글프다. 아마도 지난 내 청춘을 좀 더 뜨겁고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때문이리라. 


벚꽃 엔딩


그래서 오늘의 이 아름다운 봄날이 하루하루 더 소중하고 아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 찬란한 봄날이 흘러감을 마냥 아쉬워해야만 할 일인가? 아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그 시간이 진정 소중하다면 흐르는 세월을 붙들려하지 말고 짧은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해 즐겨야 함이 마땅하다. 


인생도 마찬가지,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중년, 노년을 젊게 살면 된다. 지나간 청춘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남은 날들을 보다 열심히 알차게 채워가야 한다. 그러면 인생의 가을, 겨울도 기쁜 봄날처럼 보낼 수 있으리라.


오늘 강가에 산책을 나가보니 어느새 백화는 모두 지고 신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싱그러운 신록도 울긋불긋 화사한 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이 찬란한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남은 봄날을 마음껏 즐기려 한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위하여……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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