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직종도 마찬가지겠지만, 법조계는 유독 육아휴직에 박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히 로펌을 다니는 여자변호사들은 육아휴직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분위기였고 출산휴가 3개월도 보장되면 다행이었다. 출산휴가를 쓰더라도 3개월밖에 없으니 그 3개월을 최대한 아이와 보내고 싶은 마음에 대부분 출산 직전까지 회사에서 일을 했다. 임산부라고 회사에서 봐주는 일은 없었다. 기껏해야 고객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 불려가지 않는 정도일 뿐(이것도 배려라기보다는 같이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안 부르는 것에 가깝다), 야근을 하지 않고 저녁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문화인 곳은 거의 없었다. 출산예정일 전날 밤까지 회사에서 서면을 쓰다가 진통이 와서 그 길로 바로 병원에 가 출산했다는 비인간적인 일들이 마치 영웅담처럼 회자되고는 했다. 최근 들어서야 그나마 육아휴직을 3개월 정도 사용하는 변호사들이 대형 로펌에서도 생기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로펌 변호사가 아닌 사내변호사도 회사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마음 편하게 육아휴직을 쓰는 분위기는 아니다. 분명 법에서도 육아휴직을 1년을 보장하고 있고 회사 내규에도 그렇게 적혀있지만, 육아휴직 1년을 모두 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출산휴가 외에 육아휴직을 몇 개월이라도 쓰는 것은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사내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나도 아이를 임신했을 때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3개월을 사용하겠다고 말했을 때 상사분이 적잖이 당황하셨던 기억이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고 출산휴가만 다녀오는 것이 응당 ‘모범적인 변호사’라면 따라야 할 매뉴얼인데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법에서 나에게 명시적으로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만 그 권리의 행사는 곧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명백한 나의 의무를 다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언어로 전달되지는 않지만 꽤 당당한 상대의 실망스러운 마음을 적당히 모르는 척하며, 복직 시점에 대해 재차 물어오는 질문에 6개월 후에 돌아오겠노라 꿋꿋이 말했다. 꽤 여러 번 복직 시점을 물어보는 질문은 정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변호사의 길을 가지 않아도 괜찮느냐고 확인하는 질문과도 같았다. 내가 결정을 번복하지 않은 그 순간 나는 일에 열정이 있고 회사에 충성심이 있으며 남들보다 열심히 달려 장래가 촉망되는, ‘모범적인 변호사’에서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도 당시 나는 이직을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임신을 하게 되어 회사에 미안한 마음도 컸기 때문에 6개월동안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았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회사에서 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로펌으로부터 파견변호사를 6개월 동안 받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해준 것에도 감사했다. 동료 변호사들의 미움은 그래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시작하긴 했지만, 출산과 육아를 직접 겪어보니 출산휴가를 3개월, 육아휴직을 1년으로 정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게 되었다. 경험하기 전에는 단순히 육아휴직 기간을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 큰 무리를 주는 사건이었고, 임신과 출산을 겪은 여성이 몸을 보호하고 회복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이 1년 3개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산 직전 3개월은 배가 너무 무거워져 잠을 똑바로 자기도 어려웠고 배뭉침도 자주 있어 한 장소에 오래 앉아 일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출산 후 약해진 관절과 골반 등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그래서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법으로 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직접 겪어보니 다들 어떻게 출산 후 3개월만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인지 더욱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출산 후 3개월이면 겨우 여기 저기 아픈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할 때이고 관절은 아직 약할 대로 약한 상태이다. 아직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몸조리를 할 수 있는 때다. 내 눈에는 정상과 비정상이 서로 바뀐 듯했다. 육아휴직을 1년 모두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고 안 쓰는 것이 예외적인 상황이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다들 법으로도 보호하고 있는 육아휴직 기간을 거의 쓰지 않고 자신의 건강과 아이와의 시간을 내려두고 일터로 돌아가는 것일까?
나 스스로도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겠다 차마 회사에 말하지 못하고 6개월만에 회사에 복직했다. 아이가 이제 슬슬 기기 시작하고 이유식을 시작할 때였다. 아직 지켜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처음 먹어보는 재료를 넣은 이유식을 먹었을 때의 아이의 표정이 어떨까, 우리 아이는 어떤 맛을 좋아할까, 새콤한 것을 처음 먹었을 때 찡긋하는 표정은 얼마나 귀여울까, 오늘은 어떤 물건에 관심을 보일까, 바깥 산책에서 무얼 보았을까, 어떤 귀여운 옷을 입고 밖에 나갔을까, 낮잠은 잘 잤을까, 첫 걸음마를 했을까 등등. 왜 내 배로 힘들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는데 육아의 힘듦과 가슴 벅찬 행복감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 혹은 세상이 말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커리어를 위해서(너무 쉬면 업계에서 도태될 수 있다). 둘째, 돈을 벌기 위해서(집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셋째, 육아는 육체노동에 가까워 매우 고되기 때문에 회사일을 하는 게 나아서(내가 번 돈으로 시터이모님을 쓰는 것이 더 현명하다).
하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기의 아이를 촘촘히 내 눈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 아이와 충분히 교감하고 나의 아이를 알아가고 싶은 마음,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의 마음에 응답하고 싶은 마음에 비하면 이 이유들은 모두 내 인생에서 굉장히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이었다. 만약 이 인생을 다 살고 죽기 전의 내가 지금의 시간을 돌아본다면 그 어떤 이유도 아이와의 시간을, 내 간절한 마음을 포기한 것을 결코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이러한 나의 간절한 마음을 스스로 깨닫기까지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강력한 마음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인정하기까지 어떻게 3년이라는 시간까지 필요했던 걸까.
육아휴직을 3개월 씀으로써 ‘모범 변호사’의 매뉴얼에는 벗어났지만, 차마 1년을 쓰지 못하고 3개월만 쓴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불량’까지는 되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서였던 것 같다. 안 그래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업무인데 1년이 넘는 시간을 쉬고 돌아오면 무능하고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회사나 동료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몰상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일에 욕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내가 육아휴직 1년을 전부 쓰는 것은 회사와 커리어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이며 회사에 대해, 더 나아가 나의 인생에 대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 변호사들의 사례, 선배변호사들의 시선과 기대, 모범 매뉴얼과 다르게 행동했을 때 느끼게 되는 이방인이 된듯한 불안감과 압박을 통해 세상이 나에게 주입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따를 동안 나는 병들어가고 있었다. 깊은 내면에서 들리는 나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할수록 그 목소리는 커져만 갔고, 새벽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매일 밤 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아이도 시터이모님과 생각보다 정을 붙이지 못하고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 이모님이 출근하는 시간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이모님이 집에 들어오면 얼굴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휙 돌렸다. 말을 하기 시작하자 새벽에 깬 어느 날은 울며 아침이 되면 엄마를 못 보니 눈을 뜨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 퓨즈가 끊어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면 일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었는데, 정작 아이에게 눈 뜨고 싶지 않은 아침을 주고 있었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내가 평생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결과가 엄마인 나도, 아이도 간절히 원하는 함께하는 시간을 희생한 채 회사와 업무를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라니.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퓨즈가 한번 끊기니 이제는 더 이상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릴 줄 아는 ‘이성적인 나’는 사라져버렸다.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생각들에 대해 분노할 뿐이었다. 가정과 육아는 시터이모님이나 부모님께 맡기고 회사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프로페셔널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도대체 누가 정한 것일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하고 경제적인 여건만 생각하는 것이 내 삶에 대해 책임감 있는 태도인 것일까?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위해 달렸는데 만약 한참 후에 내가 후회하게 된다면 그땐 도대체 누가 책임져주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나에게 들이대고 있는 ‘모범’의 잣대는 결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을 책임져주는 매뉴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에서 벗어나면 경쟁력을 잃게 되고 선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실체 없는 불안감을 서로 자극시켜 모두를 옭아매는 교묘한 인력 운용 지침에 가까웠다.
모범 매뉴얼이 어디에서 기원했든, 누구를 위한 것이든 상관없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기꺼이 ‘불량’이 되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 선택은 3년 동안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통받고 방황하며 내린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정을 공표했을 때 부모님, 회사 상사와 동료들은 대부분 내 결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처음 출산휴가를 떠났을 때와 같은 압박감과 이방인이 된듯한 외로움과 불편감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불량’이 되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그제야 명확해지고 있었다
“남은 9개월 육아휴직 모두 사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