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상의 스펙트럼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by 호태

※ 이 글에는 소설《채식주의자》의 핵심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연작 소설이다. 총 3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주인공 ‘영혜’의 주변 인물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꾼 이후로 채식을 시작한다. 그녀에게 채식은 단순 식습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거부하는 행위이다. 채식을 시작하고 몸이 점점 야위어 가는 그녀는 마지막에는 음식 자체를 거부한다. 영혜의 이러한 행적은 식물로서의 삶을 선택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한강의 연작 세 편을 통해 그녀가 선택한 방향과 주변 인물들-언니 인혜와 형부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


1.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여성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가 본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다. 특별한 장점도 단점도 없다. 영혜로 인해 남편은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낼 필요가 없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아내의 역할도 충실하게 해낼 것이라 믿는다.

영혜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을 일삼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렸을 적 그녀는 군말 없이 때리면 맞고, 폭언을 묵묵히 듣는 아이였다. 그런 영혜는 커서 어른이 된 후에도 가부장 제도의 지배를 견디며 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채식을 결심한다. 채식은 그녀의 인생과 그 주변까지 뒤바꾼다. 도대체 그녀는 왜 채식을 결심했을까?

이 소설에서 고기는 인간 그 자체를 의미한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든 존재와 가부장제라는 방어막 안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남성을 상징한다. 영혜가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아내의 자리는 부재하게 된다. 여기서 화자의 무력함을 엿볼 수 있다. 가령, 출근 전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려놓은 셔츠를 찾지 못한다. 게다가 채식하는 아내가 불만이라면서 영혜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뿐,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능한 화자의 모습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며 마치 가축=고기처럼 보인다.

영혜의 꿈은 그녀가 처한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피 묻은 고기에 대한 끔찍한 장면과 즐거워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동시에 직면한다. 가부장제의 역한 면(피 묻은 고기)과 거기에 순응할 때 이루어지는 평화를 경험한 영혜는 채식을 결심한다. 여기서 채식은 단순, 남성주의 사회에 대한 저항이 아닌, 부조리한 인간 삶에 대한 거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영혜는 자신의 몸에 고기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남기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둥근 가슴이 딱딱해지고 뾰족해질 때까지 몸을 비우려 한다. 이런 영혜의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식물 같다.

식물이 된 영혜의 저항은 단순 채식에서 그치지 않는다. 속옷을 입지 않거나 상의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는 부조리한 삶에 대한 자신의 답답함을 나타낸 무언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그녀는 점점 죽어가는 것 같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영혜에게 해방이자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올 인혜 부부를 통해 부조리한 삶에 어떤 해결책을 내리고 행하는지 다양한 인물의 유형을 볼 수 있다.


2. 해소해야만 하는 남자


두 번째 이야기의 화자는 영혜의 형부이다. 그는 예술가이며 한 집을 위해 헌신하는 아내와 달리 자유롭다.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다 집에 오지 않는 날도 있고, 인혜와 달리 고정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 아내 인혜는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고, 아이의 육아까지 책임지고 있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부조리에 대한 다른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인혜는 삶이 고되고 힘들지라도 묵묵히 그저 견디는 사람이고, 화자는 삶이 힘들기는커녕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산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아이를 봐달라는 아내의 부탁도 거절할 수 있고, 처제에게 욕정과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 그녀의 몸을 자신의 욕구를 이루는 데에 이용하고, 도덕적 규범의 선 역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욕구와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위험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통해 한강은 인간 본성의 위험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와 달리 인혜는 동생과 남편의 일을 겪고도 삶을 여전히 묵묵히 견디고 있다.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 삶을 놓아버리거나 어떻게든 이루려는 양극단의 두 인물과 다른 인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 삶을 견디는 여성


인혜의 남편과 동생의 이야기는 꿈 같다. 양극단에서 영혜와 형부는 삶을 밀어내거나, 욕망만 좇다가 무너졌다. 그에 반해 인혜는 어느 양쪽에 치우치지 않고, 삶을 견디고 있다. 동생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가엾게 여기고, 남편을 온전하게 미워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과거 행적을 뒤돌아보며 자신을 탓한다. 그런 그녀가 소설 후반부에 삶을 견디는 것이 아닌, 살아가려 결심한 것은 다름 아닌 영혜 때문이다.

정신병동에서 마지막으로 영혜에게 음식을 주입하려 하자, 영혜는 언니의 앞에서 처음으로 안간힘을 쓰고 소리친다. 그전까지 의식 너머로 꿈꾸는 상태였던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 같다. 여기서 인혜는 영혜를 통해 인간의 삶을 완전히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꿈속에 갇힌 상태로 삶을 외면하는 영혜를 그녀는 처음으로 이해한다. 이후 인혜는 자신 역시 그처럼 살 수는 없으며 깨어나기로 결심한다. 아이를 두고 죽으려던 선택을 후회하고, 자신의 웃게 하려는 아이를 생각하며 살아갈 의지를 품는다.

여기서 그녀가 모성애에 의해 깨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영혜를 통해 꿈꾸는 상태를 인지했고, 깨어나기로 결심했다. 모성을 비롯한 복합적인 삶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녀는 각성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초록 불꽃이 일렁이는 것을 끈질기게 응시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깨어났음을 상징하면서 자신을 위한 삶의 이유를 찾아갈 것을 암시한다. 그녀는 마침내 삶을 응시할 준비가 된 것이다.


4. 인간 삶에 대한 인물 스펙트럼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하나의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먼저, 부조리한 삶에서 모든 걸 포기하는 영혜, 부조리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다 무너지는 형부. 이 두 인물이 양극단을 이룬다. 그리고 인혜가 그 중심에 서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견디는 인간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써 삶을 대하는 사람의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이 소설은 단순 여성의 해방 서사를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여러 방법을 보여준다. 우리는 영혜처럼 삶을 포기할 수도 있고, 형부처럼 욕구에 따라 막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인혜처럼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은 어떠한가?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을 위한 이유를 찾고, 투쟁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견딤이 아니라 살아 있음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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