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년을 온다를 중심으로
※ 이 글에는 소설《소년이 온다》의 핵심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장편 소설이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1980년 광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계엄군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화자로 등장한다. 사실적 묘사를 위하여 문학적 표현을 최대한 배제했다는 것과 담담한 문체가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소설이 하나의 회고록 혹은 진술서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반문하게 만들기도 하고, 삶을 견디는 한강식 세계관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이 소설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살펴보자.
1. 80년대 광주의 사람들
이 소설을 읽기 전, 우선 5.18민주화운동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 전남 일원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중항쟁을 말한다. 계엄군에 의해 무차별 폭력과 사살로부터 어떻게 인물들이 삶을 견디었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화자는 ‘정대’라는 소년이다. ‘정대’가 자신의 친구 ‘동호’를 관찰한다. 중학생인 동호는 계엄군의 총탄에 의하여 친구 정대를 잃었다. 그 이후 동호는 죽은 친구를 두고 온 것에 대한 죄책감, 친구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도청 사무관에서 시신 관리를 돕는다.
3장에서는 사무관에서 함께 봉사했던 은숙, 4장에서는 시민군 ‘김진수’에 대한 증언을 부탁받는 화자가 등장한다. 은숙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어떻게든 잊어보려 노력한다. 계엄군에게 맞은 7대의 뺨을 하루에 한 대씩 잊기로 다짐하기도 한다. 그녀는 과거를 마주한다. 여기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녀와 동호의 모습이 나온다. 죽음에 무던해졌다고 하지만, 죽고 싶지 않다던 은숙, 계엄군에게 맞서기 위해 남았지만, 난간을 붙들고 떠는 동호. 계엄군에 맞서던 이들도 우리와 같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영웅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그런 기질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사명감을 걸었다. 이 대목에서 한강의 비영웅적 세계관과 인간의 근원적 존엄에 대한 신뢰를 엿볼 수 있다.
반면 4장의 화자는 조금 다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다 보니 계엄군에게 맞서게 되었다. 이 화자를 통해 한강은 공동체적 도덕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마음이 여러 개가 모여서 이유가 뭐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2.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소년이 온다>를 읽고 반문하게 된 것이 있다. 진정한 선이란 무엇인가? 역사적 사실을 위해 진술을 요구하는 윤의 행위는 선이라 볼 수 있을까? “내가 너라면 숨어 있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한 성희는 온전한 정의를 실현했을까? 한강은 이에 대한 답을 선주라는 인물을 통해 하고 있다. 그녀에게 윤의 부탁은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온다. 성희 언니가 했던 말은 그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겪은 사람들에게까지 같은 잣대를 들이댈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지 않다. 잊지 말아야 할 당위가 있다면, 그것을 잊을 권리 또한 있다는 것이다.
3. 한강식 세계관, 삶을 견디는 저마다의 방식.
한강의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삶을 견디는 인물들. 죽어가는 친구를 두고 온 동호, 폭력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은숙, 잊을 권리 마저 빼앗겨버린 선주, 거기에 죽은 아들을 마음에 묻고 태연하게 살아가는 동호의 엄마가 그러한 인물들이다.
동호는 정대를 찾기 위하여 사무관에서 시신 관리를 하는데, 작중에서 묘사된 동호를 보면 그의 감정을 크게 알 수 없다.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사무관의 일을 돕고, 온종일 정대를 떠올린다.
은숙과 선주는 어떠한가?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들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은숙은 태연하게 자신이 맞은 일곱 대의 뺨을 잊기 위해 그 상황을 떠올리려 한다. 선주는 소극적인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잊을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낀다.
반면 4장의 인물들은 자신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법은 죽음 뿐이라며 그 고통에 잠식된 채 살아간다.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삶의 방식을 볼 수 있다.
그런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선 인물도 있다. 동호의 엄마가 그런 경우인데, 그녀는 아들을 잃은 감정이 너무나도 커서 이에 대한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엄마로서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슬픔에 잠식될 수도 없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버티는 것이다. 그녀가 동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애써 그에 대한 슬픔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남일 보듯 태연한 태도와 감정이 절제된 어투를 사용하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
이 인물들을 통해 삶을 견뎌내는 자신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한강은 그들에 대한 작은 위로를 건네고 있다.
4. 결론
이 소설에는 문학적 표현이 거의 없다. 최대한 담담하고 객관적인 문체를 사용하는 것은 한강이 그들에게 보내는 애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을 견뎌내는 저마다의 방식,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논의도 내포하고 있는 이 소설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