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신경증과 정신병은 아동기의 고착으로부터 비롯된다. 또한 어렸을 때 큰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는다면, 당사자가 성인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과 사고에 여러 제약을 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동기때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엄마다. 사회화 되지않은 《언어와 논리》 이전의 본능적 단계에서 모든 원시적 욕구의 충족과 불만족은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가 수더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랄 경우,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울고 떼를 쓰는 고집쟁이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낙천적인 아이가 예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랄 경우 예민한 엄마의 기준에 부합하고자 행동에 제약을 받고, 기준에 미달할 경우 낙담하여 소심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이처럼 엄마의 역할은 한 사람의 기질과 성질에 영향을 주고 인생 전반에도 변화를 줄수도 있다. 긍정적 영향이라면 좋겠지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 스스로 자신이 낳은 아이를 고통으로 내몰아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양육자의 훈육이 개인에게
억압이나 제약으로 작용되어서는 안된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사회의 주류가 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엄격한 훈육을 견디지 못해 존속 살인범이 된 경우가 있었다. 실제로도 전교권에 들어가는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등만을 원하는 엄마의 기준에 미달하는 것이 두려워 끔찍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강요로 억압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살인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왜 엄마는 아이를 그렇게 압박했을까? 이러한 결과까지 계산된 억압이었을까.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 실수를 만회하기도 하고, 개선점을 파악해 보다 완벽한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위의 이야기에 이어 엄마가 아이를 압박한 이유에 대해 말해 보자면, 엄마도 나름의 경험에 의해 어떤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가 학벌이 부족해 힘든 고생을 하며 살아왔거나, 부유하지만 지성이 부족해 항상 목마름을 느껴왔거나, 학창 시절에 꼴등만 해서 열등감이 심했기에 자기의 아이만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랬거나, 혹은 자신이 공부를 잘했으므로 응당 자신의 아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거나. 여러 상황을 가정해 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당사자만이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에 투영하여 실현하려는 부모도 있고, 자신이 느낀 우월감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그릇된 훈육을 하는 부모도 있다. 분명한 것은 개인의 경험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 생각이 타인에게 제약이 되어서는 안된다. 훈육이 억압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므로 부모가 설계한 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기질이나 자질, 성격과 재능에 따라 자신의 목표를 설정해 자생해야하는 독립된 객체다. 적어도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납득하지 못할만한 조언은 강요이자 폭력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판단이 옳으므로 상대방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라는 오만과 권위의식은 버려야 한다. 선의에 의한 선물일지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면 짐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잘되라는 선의로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했지만, 아이에게는 엄마의 죽음만이 정답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서 안타깝다.
부모는 아이가 세계관을 형성할 때 참고하는
가장 큰 우주(기준)가 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하고, 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을 행한다. 그리고 그 학습을 가르치는 첫 번째 선생님은 엄마다. 엄마의 역할 또한 엄마에게서 배운다. 엄마의 단점을 욕하면서도 그 단점까지도 똑같이 학습한 경우가 있지 않는가? 학습과 환경은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배운만큼만 행할 수 있다. 욕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욕을 잘하고, 공부하거나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공부잘하는 자녀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폭력과 음주를 보고자란 아이들은 언젠가는 학습된 것을 행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엄마의 역할은 사회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가족은 공통된 식습관과 생활양식을 공유하므로 특정한 병질이나 정신병리가 상속될 수 있다. 자기애적인 양육자는 아동을 자신의 자존감 유지의 수단으로써 이용한다. 좋은 학벌, 좋은 성적, 뛰어난 사교성, 아름다운 외모, 예의 바른 태도를 강요하므로 자기애적인 부모에게 양육된 아동은 완벽주의자 기질을 가져 고통과 강박 속에 평생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분열성 성격을 지닌 양육자의 경우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자기만의 방식을 토대로 독선적인 삶을 산다. 아동의 성향이 사교적이고 활발하더라도 분열성 성격의 부모는 생활 반경이 좁고 넓히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타고난 기질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울감과 분노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다시, 부모.
좋은 엄마와 좋은 아빠의 이상적 조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모범과 표준을 지키면 된다. 그러나 원시적 변수의 집약체인 아이를 양육하다보면 평정심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좋은 아빠다. 좋은 아빠는 좋은 사회에서 만들어 진다. 개인과 사회의 도움으로 길러진 인간은 올바른 개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이 될 것이며, 결국 그 편의와 이익은 우리 몫으로 돌아 온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병든 사회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로, 아직까지도 사회는 전통적 어머니상을 원한다. 집안일과 육아까지 모두 어머니 전담이다. 그래서 엄마의 역할은 버거울 수 밖에 없다. 매뉴얼이 없으므로 잘 해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심리학적 시선에서 보면 개인의 삶은 어머니의 존재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므로 어머니는 어머니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야 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브로콜리뇌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