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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줄을 타고 춤을 춥니다

에세이

by 청현 김미숙

뜨거운 태양도 지쳤는지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직도 후끈한 기운을 느끼며 저녁을 먹고 호수가를 걷는다. 연꽃도 지쳤는지 치마잎을 뒤집어쓴 채 불빛에 하얗게 모습을 드러낸다.

호숫가의 밤은 산책로를 따라 길게 뻗으며 시원한 바람으로 막혔던 숨통을 풀어놓는다. 기분 좋게 데크를 걷고 있는데 데크의 빈 공간에 부지런히 집을 짓고 있는 거미가 눈에 띈다. 거미가 집을 짓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았다

거미의 조그만 몸통 어디에서 실이 나오는 걸까?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그 작은 존재의 정교한 집 짓는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거미는 무심한 듯 천천히,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실을 뽑아냈다. 마치 오래전부터 설계된 도면을 따라가듯, 선을 잇고 선을 넘고 교차하며 빈 공간을 하나의 세계로 바꾸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배 끝부근에서 무한한 실이 나오고 있었다.

실이 끊임없이 나오는 배를 보며 거미의 실에 대해 찾아보니, 실은 거미 배 끝에 있는 방사샘이라는 기관에서 분비되며 공기와 닿는 순간 고체화된다고 한다. 다양한 성질을 지닌 실이 용도에 따라 생산된다. 중심 구조를 만드는 튼튼한 프레임 실, 먹이를 붙잡기 위한 끈끈한 점액 실, 그리고 몸을 지탱하거나 하강할 때 쓰는 안전 실 등, 거미는 마치 건축가이자 재료공학자, 디자이너의 능력을 모두 지닌 존재였다. 이 조그만 생명체에 이런 놀라운 능력이 숨어있다니 그 능력으로 생존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중심부에는 방사형 줄을, 그 사이를 나선형으로 감으며 그 속에는 균형과 인내, 그리고 끊임없는 계산이 있었다. 가끔씩 멈춰 서서 지은집을 쳐다보며 다시 방사선 형태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끊어짐도 없이 마치 설계를 해서 집을 짓는 것처럼 간격을 맞추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산책로 데크의 공간으로 거미들이 각자의 집을 만들며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집모양이 다 똑같지는 않았다. 방사형 만들다 찌그러진 거미집도 있고 엉성하게 실을 풀어놓았지만 벌써 벌레들이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미줄도 눈에 띈다. 거미들은 밤 사냥을 위해 데크의 공간을 따라 자기 영역을 확보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은 신기했다. 마치 낚시꾼이 사냥하듯 거미는 여유를 가지고 거미줄에 많은 벌레들이 밤새 모여들기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가끔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거미줄을 보며 실크처럼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섬세한 실이 바람에도 끊어지지 않고 강한 비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며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실이라 생각하니 모순된 상황에 잠시 혼란스럽다.

또한 거미는 보기에도 흉측스럽게 생겨 인간에게 호감을 받지는 못하지만,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보듯이 스파이더맨은 거미의 능력을 가진 뛰어난 영웅으로 호감 받고 가느다란 실은 로봇에도 적용시켜 사용한다고 하니 거미에게는 생존의 실이요, 인간에게는 유용한 실이라 잠시 생각해 본다.


거미가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실’을 허공에 날려 보았던가. 잡히지 않는 꿈을 향해, 흔들리는 신념을 붙잡으며, 때로는 외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듯한 삶을 살아왔다. 보이지 않는 실을 뿜어내며 나만의 집을 지어온 시간들, 그 집은 과연 얼마나 튼튼했을까, 얼마나 정교했을까.

허공 속에서 춤추며 실을 뿜어내 지은 거미들의 생존의 집은 지나가는 바람도 흔들어보지만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고무보다 유연하여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또한 구부러지기 쉬운 직선이 아니라 방사형과 나선형 구조로 외부의 충격을 분산시키고 흡수하여 집을 유지하는 거미의 탁월한 과학적 설계에 감탄이 나온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걸 보면 거미줄은 "자연이 만든 가장 섬세한 광학 예술품"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나의 삶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반짝이는 실로 보일 수 있을까. 생존하기 위해 바람에 흔들려도 끊어지지 않고 비에 젖어도 무너지지 않는 시간의 실을 뿜어내기 위해 허둥대던 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데크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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