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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현 김미숙 Apr 24. 2024

"시를 읽어주는 아버지" 함께 해보실래요?

에세이

어린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는 부모는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좀 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되라고 좋은 책들을 많이 사서 아이들에게 읽어준 것 같다. 아이들 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퇴근 후 피곤해도 책을 읽어주려 노력했던 것 같다. 하루종일 말하는 직업이다 보니 입이 아파 동화를 녹음해서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시를 읽어준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주변에서도 시집을 사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는 부모를 만난 기억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외국인 청년과 만났을 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시를 자주 읽어주셔서 시에 익숙해 있고 시를 즐겨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나 자신에 깜짝 놀랐다.

윤동주 문학관 야외무대에서 아는 낭송가들과 출판기념회 겸 시낭송을 작은 야외무대에 펼쳤었다. 그런데 외국 청년 두 명이 자리에 앉아 유심히 한국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듣는걸 보고 신기했다. 혹시 한국어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한국어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낭송을 열심히 듣는 외국인에게 이해도 못하는 낭송을 왜 듣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목소리 분위기와 낭송가의 얼굴표정을 보고 감성을 짐작한다고 했다. 올 해 시집을 출간하면서 시 몇 편을 내 나름대로 영시로 번역을 했었다. 그래서 내 시집 속에 막걸리에 관한 시를  영어로 번역해 놓았는데 한번 낭독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막걸리 술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지만 흔쾌히 무대에서 낭독을 하는데 운율에 맞춰 또박또박 잘 낭독해 깜짝 놀랐다. 그는 떠나기 전 내 시집 한 권을 정중히 요청하며 막걸리도 도전해 보겠다고 말하고 좋은 경험을 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남겼다. 사진을 보내주려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 후, 나중에 막걸리 인증샷과 더불어 그가 시를 좋아한 계기를 말해주었다. 어린 시절 자랄 때  아버지가 꼭 시를 읽어주셔서 그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젊은 청년 둘이 한국에 관광을 와서 시에 대한관심으로 주변에 한국시인에 대해 물어보니 윤동주 문학관을 소개해줘 방문했다고 한다.

윤동주 문학관에는 제목만 영어로 표기되어있고 시는 영어로 번역된 것이 없을 텐데 갑자기 걱정이 되며, 동시에 어린 자녀 앞에서 시를 읽어주는 아버지를 상상해 본다. 얼마나 감성이 있는 아버지인가? 아버지가 읽어주는 시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부모와의 유대감도 좋을 것이고, 정서적으로도 얼마나 안정되어 있을까 상상해 본다. 그는 폴란드 시인  Wislawa Szymborska를 좋아한다며 책꽂이에 그녀의 시집을 두고 읽는데, 그녀의 시집 곁에 내 시집을 두고 읽겠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도 참  아름다웠다. 비슬라와 쉼보르스카라는 시인에 대해 잘 몰랐는데 그녀는 이미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노벨위원회는 그녀를 "시의 모차르트"라고 칭했다고 한다. 그녀의 시는 정교한 언어와 깊은 사유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사랑의 미학>이라는 시로 유명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시에 대한 관심이 이런 노벨상을 받게 하는 게 아닐까? 외국 미술관에 가보면 그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아이들도 그런 문화에 많이 노출이 되어야 좋은 정서 속에서 올바른 인성을 가지는 것 같다.

예전에 어느 의사 선생님의 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분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시를 접해서 보급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조금씩 정서적으로 앞서 가는 분들이 늘어나는구나 생각했었다. 한국 시도 번역을 잘해 외국에 좋은 시를 소개할 기회도 가지고, 또한 아이들에게 들려줄만한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시가 뭘까 생각해 본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감정에 휘둘려 쓴 나의 시가 갑자기 부끄러워지며 초라하게 다가온다.

젊은이들이 시에도 관심을 가져서 20대의 청년들은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풍부한 감성으로 시를 쓰고, 30대 이후의 젊은이들은 그들 나름의 성숙한 시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한 윤동주도 얼마나 좋은 시들을 많이 남겼는가?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꿈과 상상력을 심어줄 시를 많이 읽어주는 아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엄마들 담당이라는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나, 엄미는 물론 듬직한 아빠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시는 얼마나 멋질까?  시를 읽어주는 아빠는 자녀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적 감성이 잘 스며들어 자라난 아이들은 좋은 성품을 가지고 사회에 이바지할 것이다. 아울러 어릴 때부터 시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시를 쓰는  훌륭한 젊은 시인들이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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