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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정 Jul 29. 2021

나의 우울증 치료기 02

첫 치료를 받기까지


 앞서 내가 우울증을 앓은 기간이 8년이라고 밝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슴속에 검은 점액 덩어리가 엉겨있는 느낌을 받았으니, 아마 그쯤부터가 맞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많은 병원을 다니면서 이제는 나의 히스토리를 15분 만에 후다닥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항상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게 10살 때의 기억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평소처럼 학교가 끝나고 차비를 아껴 불량식품을 사 먹고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전후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날 인도 한복판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막막해서. 내가 고작 열 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막막해서. 앞으로 삶은 더 힘들어질 테고 그걸 견디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몇 배는 더 살아야 한다는 게 막막해서,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뭔가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또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져야 할 테고, 공부하는 것들도 어려워질 테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을 견뎌야겠지. 그 생각에 막막해서 한참을 울었다. 지금이야 그때의 그 감정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때는 내 감정을 나 스스로도 온전히 느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막막했다.


 어느 의사는 그 기억에 대한 말을 듣고 나의 우울이 기질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기질적인 우울이라는 말이 넌 원래 그런 애야, 넌 원래 우울한 애고 나아질 수 없어,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서. 한 편으로는 웃기기도 했다. 나는 어디를 가도 낙천적이고 시원시원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인데, 내가 기질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라고? 싶어서.


 그 일은 나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까지 나는 잘 지냈다. 또래 집단에서 나는 항상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그 '이상하다'는 말은 결국 독특하고 웃기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항상 있었다. 나는 적응을 잘하는 학생이었고 학창 시절에 있을 법한 따돌림, 괴롭힘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게 깊은 상처를 남길 만큼은 아니었다. 단지 아직까지도 남은 약간의 불안에 영향을 줬을 뿐.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서부터 나는 연필을 깎는 칼을 하나 사서 손목을 긋기 시작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이유는 나도 몰랐다. 그냥 그게 마음이 편했다.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나는 그 '이상한' 애로 많은 친구들을 만나며 즐거운 삶을 살았는데, 밤마다 손목을 그었다. 피를 봐야 마음이 가라앉고 편히 잘 수 있었다. 다행히 눈에 띄는 흉터가 남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짝사랑했던 사람과 만나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 사귀는 거야! 하고 말하며 만난 건 아니었지만, 많은 연인들이 할만한 일들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무서워졌다. 나는 이렇게 해도 되지만 너는 안돼. 너는 나를 거부해서는 안돼, 너는 나를 좋아하니까. 왜 나를 거부해? 왜 너는 나에게 비밀을 만들어? 한참 뒤의 일이지만 법적 대응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2년 이상 징역을 살 수도 있는 일들이었다. 무서워서 도망을 쳤다. 만난 시간보다 도망친 시간이 더 길었다. 해가 바뀌고 스무 살의 봄이 지나고서야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생활 영역이 겹치는 사람이었기에 일상생활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 정작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무서울 뿐 나타난 적 없는 증상들이 뒤늦게야 나타났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맨 뒷자리에 앉았다. 언제 구토가 치밀지 모르니까. 학교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새빨간 얼굴로 눈물범벅이 되어 집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더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친구들의 권유에 통원이 편한 거리에 있는 의원을 찾아갔다.


 정신과 진료 자체가 처음이었고, 내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도 어색했다. 대중교통을 탈 때, 길을 걸을 때마다 무서워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욕할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이, 연애감정을 가졌으나 내게 상처를 줬던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날 거 같아요. 의사는 관계망상이라는 단어를 일러주며 다음 진료 때는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 말을 했다. 입원을 고려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아마 그 병원에서 나를 조현병으로 진단한 것 같다고, 우리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으니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다. 첫 진료를 본 병원 바로 옆의 의원을 다시 찾아갔다. 새로 받은 진단서에는 세 개의 코드가 쓰여 있었다. F32.2, F41.9, F45.0. 우울장애, 불안장애, 신체화장애 3가지의 진단명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치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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