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때 애틋했던 사람과 극적인 해후를 하게 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열세 편의 짧은 소설이다. 헤어진 연인, 선생님, 그리웠던 선배 등 저마다 다른 사정으로 이별하고 재회하는 과정에서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애써 담담한 척하거나, 유난히 슬프지도 않게 아릿한 시절을 털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던 사람이 떠오른다.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함축하고 있는지, 넌 알고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는 열세 번의 이별을 겪었던 사람처럼 마음이 내내 여린 하늘빛이 되었다.
구겨진 마음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일만 들어오면(하긴 하지만) 겁부터 나는 사람.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보다는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p.26)
그동안 나는 우리가 같은 마음이 아닐지 수없이 상상해 왔어. 꼭 하나만 물을 수 있다면 그래서 너는 어땠는지 묻고 싶어, 그날 왜 그랬는지가 아니라 그 후로 어땠는지를. 사실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늘 그렇듯 이후의 일들일 테니까. 나는 그걸 들을 준비를 하고 여기 돌아왔어. 지금의 나는 그때 네 진심을 외면하면서까지 꽉 붙잡고 잃지 않으려던 것들을 결국 잃은 사람이 되어 있거든.(p.118)
사실 나는 선생님에 대해 매번 다른 감정을 가진다. 점점 발전하거나 점점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없이 왔다 갔다 한다. 처음에는 시시때때로 변하곤 했지만 그 후로는 차츰 넓은 간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만 다르다.(p.127)
지금은 우리 둘 다 불행하니까. 지난여름 경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은, 이라는 건 미래를 생각하기 싫다는 뜻이고, 불행하다,라는 건 헤어지자는 뜻이었을까. 근데 난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넌 “우리 둘 다 불행하니까”가 아니라 ‘내가 불행하니까’라고 말했어야 맞는데. 불행은 원래 늘 조금씩 함께하는 거 아니었나. 문영은 경수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조금이 아니었나 보다,라고 차츰 생각을 달리했고 이별을 받아들였다. (p.136)
나는 그게 좋았다. 현경의 천천한 말투와 이야기들이 고요하면서 조금 낯설다는 게. 그랬지만 사실상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었고 일대일의 관계였으며 알고 지낸 시간이 짧지 않은 것치고는 사생활에 대해 깊이 아는 것도 아니었으므로(예전엔 친구라면 서로의 삶을 공유해야 한다고 믿었었다.) 언제 연락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였을지 모르겠는데 다행히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p.182)
그때 나는 내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괜찮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으니까. 그게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고 그 뒤로 나는 안심하고 현경의 그림자와 함께 걸었다.(p.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