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ve.
모브. 한국어로는 연보라색 또는 담자색으로 번역되는 따뜻한 느낌의 자주색을 말한다. 모브는 원래 아욱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1856년에 탄생된 색이다. 현대 염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브는 인류 최초의 인공 염료이자 최초의 대량 생산 염료라고 한다.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각광받던 키니네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실험을 하다가 정체불명의 적갈색 화합물을 얻게 되고 여기에 에탄올을 넣어 자주색 용액을 만들게 된다. 그 당시 보라색은 연체동물에서만 채취해야 하는 색이었는데 화학자의 실수로 새로운 색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퍼킨은 염료를 업그레이드해 프랑스 들판에 매우 흔하게 핀 들꽃인 모브라는 꽃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 후 '모브'는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해 프랑스 왕후 외제니 등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색이 되었으며 1860년대는 자줏빛(모브)의 시대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가을의 대표적인 립 베이스로 사용되는 이렇게 예쁜 색깔은 화학자의 실수로 탄생되었다. 그리고 실수로 만들어진 모브는 한 시대를 아우르는 색으로 남게 되었다. 한 화학자의 실수가 세상 어디에도 없던 아름다운 색을 탄생시켰고 꽃이 화학을 만나 만들어진 '모브'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무 쓸모없이 버려졌을 수도 있었는데 그 의미를 알아봐 준 한 사람 덕분에 실수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실수가 해내는 성공. 어쩌면 우리가 하는 수많은 실수에는 성공보다 더 값진 의미가 숨겨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의미를 발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과학자들에게 발명과 실수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위대한 발명에 이르는 과정엔 반드시 무수한 실수가 따르고 통찰력을 가진 누군가 그 실수 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해 낼 때 새로운 발명이 완성된다고. 실수를 통해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실수는 결코 무의미한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실수를 통해 반드시 더 나은 다음을 완성해 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무수한 실수들은 결국 좋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실수를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며 슬퍼할 필요가 없다. 기꺼이 실수하고, 실수를 사랑하고, 실수가 일상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응원해주어야 한다. 실수가 해내는 일들을 기대하면서.
닫혀있는 문 앞에 오래 서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도무지 이뤄질 것 같지 않은 꿈 하나를 들고 무너지고 좌절하기만 반복했던 날들. 너무 지쳐서 나는 우주에 가장 쓸모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을 매일 껴안고 살았다. 다 잘될 거라고, 언젠가 좋아질 거라는 누군가의 위로조차 버거웠던 시간. 실수와 실패만 가득했던 날들을 꾸역꾸역 살았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힐난하면서. 그 시절 넘어진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손에 잡히지도 않았던 희망이 아니라 '넘어진 마음'이 되어서야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었다. 실수하고 실패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침잠하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일. 나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면서 나는 조금 더 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무른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은 무엇인지, 삶에 어떤 것들을 남기고 싶은지. 그런 성찰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도 사는 대로 생각하며 시간에 쫓기기만 하는 삶이었을지 모른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언제 넘어져도 무언가를 배워서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단단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인생이란 게 좋기도 했다가 힘들기도 하고, 사랑이 가득한 것 같아도 외로운 날은 있으며, 행복도 불행도 결국은 아주 짧은 한 순간일 뿐이다. 그러니 연연할 필요가 없다. 성공만 하는 인생이 없듯이 실수만 하는 인생도 없다. 불행과 실망만 켜켜이 쌓여있는 일상을 버티고 있는 것 같아도 언젠가 비는 그치고 해는 매일 떠오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도 한줄기 빛은 반드시 있다. 그걸 찾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만 않는다면.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하는 비바람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인생의 호우였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그러니 실수 좀 했다고 무너질 필요가 없다. 실수가 인생에 찾아올 때 우리는 실수의 쓸모를 아는 사람이 되면 된다. 빠르게 보다 바르게, 최고보다 최선을, 성공이 아닌 성장을 기뻐하는 내가 되면 된다. 인생의 모든 순간, 모든 조각, 모든 마음들은 결국 다 쓸데 있는 일들이다. 그러니 실수하고 실패해도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면 된다.
모브. 화학자의 실수로 탄생한 여린 보라색은 무가치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의미를 발견한 사람을 만나 유일한 색이 되고 꽃의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우리가 꽃을 피우기 위해 타울거리는 모든 실수들은 결국, 분명, 언젠가, 반드시 아름다운 꽃이 되게 되어있다. 그러니 실수가 해내는 일들을, 실수가 해내는 성공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