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날들 Sep 29. 2024

엄마라는 이름은

엄마라 쓰고 사랑이라 읽습니다

 
“너무 힘들면 일 그만하고 쉬어”     
“아니야, 나 이제 할만해요”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내 기분을 아는 엄마가 말한다.     
“나중에 네 딸이 너처럼 산다고 해봐 그래야 엄마 마음 알지.”     
순간, 마음이 덜컹했다.     
딸은 엄마에게 자식이기도 하지만 ‘엄마’로 살아가게 될 인생의 후배이기도 하니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게 되면 내 딸도 나처럼 이런 삶을 살게 될까?     
아이에게 늘 미안하고 직장에선 눈치를 보면서... 여자와 엄마 어느 경계선쯤에서 ‘나,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를 수없이 고민하면서...                

마음이 저릿하다는 말. 아이를 낳고 알았다. 아픈 아이를 두고 학교로 출근할 때 하루 종일 마음이 저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떤 삶인지, 어떤 마음을 견뎌야 하는지 누군가 상세히 알려주었다면, 나는 아마 비혼주의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된 삶을 후회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엄마'라는 이름이 아프고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내 마음은 자주 구겨졌다. 임신 초기 상상을 초월하는 입덧으로 물 한 모금 마음 편히 먹지 못했고, 화장실 변기통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빙글빙글 도는 지구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출산의 고통은 내가 겪어왔던 어떤 아픔보다 고통스러웠고, 모유 수유라는 장벽은 나의 자존감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간들을 견디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란 사람이 이렇게 못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에 뜨악했다. 엄마라는 이름은 어디서 어떻게 배우면 되는 건지 답을 찾지 못해 마음은 늘 들썽거리데 이런 나를 믿고 태어난 아이는 너무 말갛고 예뻤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는 건 애당초 포기했지만 그래도 '잘' 키우고 싶었다. 나도 아이도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한데 욕심이 과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늘 고갈되는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다. 단 하루만 혼자서 편하게 커피 한 잔 마셔보았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늘 반문하다 쪼그라진 마음으로 혼자 우는 밤이 늘어갔다. 그러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모든 이유가 다 나에게서 시작된 것 같은 죄책감에 갇혀버렸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엄마의 부재가 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하루 종일 정말 미친 듯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도 일도, 육아도, 집안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는데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렇게 엄마가 된 지 10년지났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히 아등바등하는 삶이지만, 이제는 제법 나만의 방향과 속도가 생겼고 더 이상 남들과 비교하느라 나를 갉아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어차피 비교하면 나만 손해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얼추 '그럴듯하게'랑 닮은 정도로 육아도, 일도, 살림도 안정권에 들어왔다. 틈틈이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한 꿈도 꾼다. 젖은 솜방망이 같은 날들이 무한반복되고 나는 매일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하지만. 엄마로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을 벅찬 행복과 사랑이 내가 가진 것들 중에 가장 빛나고 예쁘다.        


그러다 문득 옆을 보니, 그제야 우리 엄마의 삶이 보였다. 우리 엄마. 내 삶의 눈물 버튼.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꼬꾸라져있을 거다. 엄마의 희생이 내 안에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나 자신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엄마의 꿈이 사라지고 얼마나 많은 엄마의 고단함이 쌓여갔을까. 감히 내가 헤아릴 수도 없는 힘겨운 삶의 순간들 마다 엄마도 혼자 울었을까? 엄마도 소녀였고 여자였던 눈부신 시절을 잃어가면서 쓸쓸한 마음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채우긴 했을까? 아픈 줄도 시들어가는 줄도 모르는 새 돌봐주지 못한 마음들만 쌓여갔겠지.

무엇하나 그냥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배웠다. 아침마다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일도, 저녁이 되면 편하게 잠들 수 있는 공간과 깨끗한 이불이 있다는 것도 모두 엄마의 희생이 있었다는 걸. 가지런한 신발, 예쁘게 묶인 머리카락, 반듯하게 다려진 옷,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편안하고 아늑했던 모든 시간엔 보이지 않는 엄마의 손길이 있었다는 걸.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되면 꼭 효도해야지 다짐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난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를 못 따라간다. 여전히 받기만 하는 철부지 딸을 여즉 졸업도 못했다. 내 앞에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엄마가 서 있고 내 뒤엔 나를 따라 걷는 딸이 있다. 우린 서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삶을 서로에게 조금씩 떼어주며 손을 잡고 함께 의지해 걷는다. 앞 서 걷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에 눈물을 눌러 담고 나를 따라 걷는 어린 딸을 보며 웃는다. 우리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서야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으니, 남은 시간은 우리 엄마의 진짜 이름을 찾아주고 싶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진짜 이름을. 그리고 나도 엄마지만 여자이고 사람인 내 이름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내 딸이 걸어올 그 길에 조금이라도 든든한 등대가 되어줄 수 있도록.                

세상 모두 멈춘 것 같은 밤     
방 안 가득 별빛 쏟아져 내려     
지친 하루 피곤한 모습의 엄마와     
우릴 닮은 네가 잠들어 있단다     


처음 샀던 엄지만 한 신발     
품에 안고 기뻐하던 어느 봄날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던 엄마의 얼굴     
그토록 밝게 빛나던 4월의 미소     
영원히 잊지 못할 설렘 가득하던     
엄마의 눈망울    


사랑스러운 너를 만나던 날     
바보처럼 아빤 울기만 하고     
조심스레 너의 작은 손을     
엄만 한참을 손에 쥐고 인사를 했단다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때     
지친 하루 집에 돌아오는 길     
저 멀리 아파트 창문 새로 너를 안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엄마의 모습     
나는 웃을 수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라는 이름 앞에     
때론 힘겨워 눈물 흘릴 때면     
이 노래를 기억해 주렴     
너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선물     
꿈 많던 엄마의 눈부신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우게 했단다     
너란 꿈을 품게 됐단다     
그리고 널 위한 이 노래     
너의 작은 손. 빛나던 미소. 소중한 우리가 있으니.     

- <딸에게 보내는 노래>, 성시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