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조직, 그 안의 숨겨진 힘.
요즘 들어 자주 마주하게 되는 신규 간호사들을 보며 느낀다. 그들은 우리 세대와는 다른 언어, 다른 속도,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다름은 조직 안에서 충돌이나 오해로 번지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다름이 아니라 그 다름을 품지 못하는 구조, 여전히 과거에 머문 기준들 아닐까?
세게 누를수록 더 강하게 튀어 오른다. 이건 단순히 조직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모든 태도에 통하는 진리다. 그리고 그 태도의 이면엔, 자신이 쥔 직위와 권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착각이 있다.
사람들은 구조의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거다. 인정하면 바꿔야 하니까. 그게 귀찮고, 두렵고, 책임이 생기니까. 힘으로 누르는 방식은 결국 반발을 낳는다. 예전처럼 참고 견디지 않는다.
말로, 이직으로, 혹은 내부 고발로 반응한다. 그래서 예전처럼 꾹 누르면 해결된다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들은 통제를 통해 존재감을 지켜왔고, 바꿀 용기도 없다.
조직은 달라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다름을 눌러 없애려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불편한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더 익숙하다. 하지만 억눌림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튀어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지금의 관리자들이 전부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어쩌면 그들 역시 누군가의 존경을 받았을 수도 있고, 내가 보지 못한 자리에서 좋은 리더십을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는 관점에 따라 누군가를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쉽게 정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나누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은 숫자나 통계로는 나타낼 수 없는,
오직 관계와 경험 속에서만 형성되는 무형의 가치니까.
어떤 이는 그 관리자와 좋은 관계를 맺었고, 존중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다른 경험을 했을 뿐이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은 "이 구조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진심 어린 질문이었다.
변화는 원래 내부보다는 외부의 자극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그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좋은 리더가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두에게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가이고, 더 중요한 건 그 시선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가다.
나는 그 가능성에서 글을 쓰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려 한다. 그것이 리더가 아니어도 조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런 것들이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MZ세대는 그 감각이 더 예민하다. 조직 안에서도 “왜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대우받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있다. “직원하고 관리자를 어떻게 똑같이 대해? 당연히 위가 더 대우받아야지.”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직책이 다르고 책임이 다른데, 그에 걸맞은 대우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직책과 책임이 다르면 그에 맞는 보상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구조적인 차이를 평등이란 말로 덮어버리는 오해에 대해다.
사람들이 말하는 평등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권한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존중을 바라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목소리는 변화의 시작점일 수 있다. 말을 들어주고, 이유를 묻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라는 작은 외침일 뿐이다. 그리고 작고 조용한 외침일 수도 있고,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사람들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예전엔 다 참고했어.”라는 말로 무시한다.
‘다 힘드니까 너도 참아야 해’라고 이 작은 외침을 버릇없음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 안에는 나도 참았는데, 너도 참아야지라는 힘듦의 강요가 숨어 있다. 그건 평등도 아니고, 성숙도 아니다.
힘든 건 맞다. 누구나 힘들다. 하지만 그 힘듦을 왜 남에게 전가하려고 할까? 왜 같이 이겨내자가 아니라 나처럼 버텨봐가 되는 걸까? 힘듦을 나누려 하지 않고, 그저 물려주려는 태도는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구성원들을 소진시키고, 그 에너지의 방향을 바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평등은 단순한 대우의 균형이 아니라, 존중의 균형이다. 지위나 경력이 더 많다고 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덜 중요해지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기회, 경청받을 수 있는 자리,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감각, 그런 것들이 조직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젊은 직원들 눈치 보면서 일해야 하네.” 하며 한탄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정말 그게 눈치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귀 기울여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늘 제자리걸음이고, 그 말을 꺼낸 사람은 오히려 문제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곤 한다. 정작 바뀌어야 할 건 사람보다 구조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쯤 되니 묻고 싶어진다. “우리는 정말 이 조직 안에서 성장할 수 있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