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찾던 사람이 신에게서 의미를 찾지 못했을 때, 죽음은 다가온다.
신이라는 존재는 초월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신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 또는 희망을 가지고 초월성의 길에 나선다는 건 애초에 삶을 어느 정도 걸었다는 걸 말한다.
그랬던 것 같다. 신을 찾고자 하는 길을 나섰을 때, 나는 내 삶을 한번 바꾸었다.
운동선수에서 목사로 바꾸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신에게서 뭔가를 보지 못했는지, 신을 찾지 못했는지, 아니면 신에게서 버림을 당했는지, 뭔지 알 수 없지만, 신을 느낄 수 없었다.
교회에서 신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나와 다른 문화에 사는 사람들 속에서 신을 느꼈다고 한다면 그건 이상한 일일까?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서 문득 신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신은 나와 낯섦 속에 존재할 때가 있다.
낯설다는 것에서 신은 새롭게 자신을 계시했다.
신은 아름다움으로, 낯섦으로, 무례함으로, 친절함으로 나타난다.
어제 일본에서 한국에 도착했다. 3박 4일 일정의 여행이었다.
작년 3개월 일정에 비하면 짧은 일정이지만 짧게라도 일본에 자주 가는 것이 마음을 달래준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든 생각은 다시 죽음이었다.
인생의 두 번의 큰 전환점을 겪고 나서 이제는 신에게서 의미를 찾는 것을 그만둔 뒤에 어떤 행동도 나에게 의미가 없어서일까? 그건 자세히 알 수 없다.
여행 중 미용 자격증 시험이 합격한 결과를 확인했다.
국가자격증이 하나 생긴 것이다.
미용자격증이 생겨도 바로 사람의 머리를 만질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다.
샵에 취직하더라도 잔 심부름이 대부분이고 잘 알려 주지 않는 곳들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500만 원이나 1000만 원을 들여서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을지는 모르겠다.
다시 죽음을 생각한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한다. 누구나 여행의 끝은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