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입원 (2025년 12월~2026년 2월)
주변인들이 아빠의 상태에 대해 걱정할 때면 나는 “누구나 가는 길을 가는 건데요”라고 최대한 무람하게 말하려고 한다. 생로병사. 태어나면 늙게 되고, 병들고, 결국 죽는다. 벤자민 버튼이 아닌 이상. 나의 무람함은 노력의 결과이고, 학습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나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타인에게 공감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보호이다.
늙고, 병듦에는 존업(dignity)이 없다. 내 속살을, 은밀한 부분을 가족이나 외부인에게 버젓이 드러내게 되고, 오랜 병원 체류 생활 끝에 씻지 못한 육신에서는 약물과 오물 냄새가 섞인 괴이한 냄새가 난다. 거의 한 달은 병원에서 기거한 탓에 나에게도 그 죽음의, 그 병듦의 냄새가 묻어 있다.
아빠를 간병하면서 가장 힘드었던 것은 본인 힘으로 걸어 다니고 화장실을 해결할 때는 어찌어찌 살핀다지만, 거동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었다. 무서웠다. 집에서 편안한 마지막을 맞게 해 드리고 싶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집에 내려가면 두 쪽 다 무릎 수술을 해 다리가 조금 불편한 모친이 살펴야 하는데, 엄마에게 그런 험한 꼴을 보게 하고 싶지 않다. 아빠는 엄마에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평생을 한이 맺힌 엄마에게 그런 무리한 요구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서울에서 모신다면 또 누가 돌볼 것인가? 나는 직장이 있고, 요양보호사를 쓴다 한들 중간중간 비는 시간을 누가 메꾼단 말인가?
한 달 여 입원 기간이 지나면서 먹는 것을 거의 끊고, 투약조차 어려워진 부친은 결국 걷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다. 유난히 헛소리가 많고, 공간 인지력이 없었으며, 모든 것이 불편해 보이던 날 부친의 맥박은 187까지 널을 뛰었다. 결국 바이탈 체크 장치를 달고, 부정맥 치료제를 주사하며, 병원에서 많이 보았던 와병 환자가 되었다. 다시 소생해 걸어서 병원을 나갈 확률은 아주 낮아 보인다.
갑지가 맥박이 높아지면서 섬망 증세를 보였다. 아빠의 머릿속에서는 젊어서 자주 다니던 어떤 시장에 머물고 있었다. 어떤 때는 기차를 타고 집에 가는 듯 보였다. 그래도 나는 알아보니 다행이다. 병실 밖 형광등 불빛을 보고 자꾸 텔레비전 끄라고 하질 않나, 어눌해진 말투에 알아들을 수 없는 묘한 말들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착한 섬망인 듯하다. 불편한 신음 소리가 밤새 이어지는 중간, 이해되지 않은 말들을 뱉었지만 다른 환자들처럼 크게 소리를 지르지도, 침대에서 자꾸 나가려고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사실 그러기에는 기운이 없었다.
나는 참담했다. 비상용으로 두었던 기저귀 3개를 다 소진하고, 아빠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 시트를 간 후 나는 편의점에 가서 여성용 팬티형 생리대 패드를 샀다. 마른 아빠의 엉덩이는 빈약하기 그지없어 아무리 작은 사이즈의 기저귀도 헐렁해서 소변이 다 새고 만다. 딱 맞는 사이즈는 여성용 밖에 없다. 그리고 침대에 까는 위생 패드와, 위생백, 의료용 물수건을 사 온다.
부친은 마지막을 앞둔 많은 환자들과 비슷한 해골바가지 같은 얼굴에 입은 연신 벌리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얼굴이 가장 보기 싫다. 시트를 갈 때도 맥을 못 춰 논에 세워둔 허수아비처럼 하늘거린다. 늙고 병듬에는 존엄(dignity)이 없다.
다행히 오늘부터는 간병인이 오기로 했다. 그런데 전 날 인수인계를 위해 써 둔 노트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환자의 상태가 밤새 바뀌어 버렸으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이 간병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세상의 중심은 나이기 때문에, 나의 고통이 가장 중요하다. 이기적이어야 한다. 이기적이어야만 지금을 버틸 수 있다. 혼자 나를 합리화한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지~~~~~는 않았다. 아빠의 상태가 나빠지자 크리넥스 한 통을 더 사다 두었다. 밤새 울면서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아빠의 상태가 안정되면서 크리넥스를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 슬픈 한편 후련했다. 이기적이지만 이 기나긴 간병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친이 이 고비를 넘기고 소생해서 좀 더 건강히 몇 년을 버텨 준다면, 제 손으로 밥을 떠먹고, 제 손으로 뒤처리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 생명을 영원히 연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렇다면 이 힘든 시기도 한 번은 더 견뎌내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며, 한 번은 일어날 일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편하게 지내셨으면 싶다. 너무 아파하고, 매 순간 고통스러운 숨을 내쉬는 부친을 보는 것이 정말 견디기 어렵다.
“아빠, 더 이상 아픈 육신에 매여 살지 말고 훨훨 날아!”라고 귀에 대고 속삭여 주고 싶다.
중간중간 부친의 소변 수발을 위해 일어나 다시 잠을 청했다. 잠은 바로 들지 않는다. 그 시간이 가장 외롭다. 아빠의 다른 자식들, 내게는 형제이고, 자매인 그들과 단체창에서 사태의 추이를 공유하고 걱정을 나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신음 속에서 마지막에 가까운 호흡을 몰아쉬고 있는 부친을 수발하는 것은 오롯이 병원에 있는 내 몫이다. 외롭다. 솔직히 외로움보다 견디기 힘든 건 지루함이다. 이 와중에 지루함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건가?
며칠 못 산다던 앞 베드 환자 딸내미가 울 때는 훌쩍훌쩍하는 귀여운 울음소리가 났다. 나는 울음소리는 어찌어찌 감출 수 있었다. 그런데 콧물이 계속 한 바가지씩 나와 주야장천 코를 풀고 있다. 눈으로 우는 것이 아니라 콧물로 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아빠가 다시 안정된 다음 날도 울음 수도꼭지가 터졌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나고, 잠을 청하다가도 울음이 터진다. 택시 안에서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운다. 하도 우니 코 밑은 다 헐어 각질이 온 하관을 덮고 있다. 하관? 지나치게 학구적인 표현인 것 같으니 턱주가리라고 하자.
혼자 많이 울고 나면 나중에 타인을 대할 때는 울지 않겠지. 눈물에는 총량이 있는 것 같으니, 혼자 많이 울고, 타인 앞에서는 의연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