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진실이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by 준지




나는 심란할 때 주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는 편이다.


다른 이가 최소 2번 이상은 검토하고 세상에 내보인 문장들을 통해 내 생각을 다듬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4년 전 처음으로 현실에 적용되자,

그동안은 관심도 없었던 경제 뉴스, 재테크 서적, 투자 강의 등을 모조리 찾아보기 시작했다.


실질적인 정보를 얻기 위함도 있었지만 '돈이 없으면 큰일 난다'는 나의 생각이 어쩌면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줄 전화위복의 슬로건이라고 돈 때문에 고생깨나 한 작가들의 위로를 듣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다.


외면하고 싶지만 현 상황은 꽤나 좋지 않은 수치로 떨어져 있다.


그것이 날 너무 아프게 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형용사에 집중해 왔다.

'착한, 귀여운, 똑 부러지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하고 싶은 게 많은, 공부 잘하는(사실 이런 형용사 못 들어보긴 했다)'


그런데 메타인지가 조금씩 생기면서 형용사 뒤에 명사를 살펴보게 됐다.


나는 어떤 명사일까


'직업인'이 되고 싶은 '직장인'은 아닌지

'똑똑이'가 되고 싶은 '헛똑똑이'는 아니었는지

'1인 가구'라고 당당하게 생각하지 않고 '외톨이'라 느껴온 건 아닌지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얻었지만 그 텍스트화된 진실 때문에 엄청난 '고독'을 느끼진 않았는지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된 반지하 방에 누워 '나'라는 명사를 정의해보곤 했다.


img (1).jpg 집에서 향 피우고 눈을 감아보는 중


깊은 고독이 알려준 사실은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나에게 '동사'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전진한다.

나는 일어선다.

나는 이해한다.


버텨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축하고 투자한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뛰었고 맛있는 거 먹었다.

'원망'했지만 너무 아팠던 아빠를 이해하고 보내준다.


미사여구에 집착했던 어린아이였지만 삶이 심플한 사회 초년생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진짜 나를 찾는 이립을 맞이하고 있다.


때론 진실이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다주는지도 처절하게 배웠고

깊은 고독을 통해 사유하는 시간을 얻었다.


정말 하나의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이 닫히고

다른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나 보다.



남은 인생에서 더 많이 잃어보고,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