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내가 죽고 나면 입안에 녹슨 동전을 넣어줄래요1)
석양 아래 붉게 닳아가던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강변을 떠올려요 한껏 일그러진 수면 속을 들여다볼 때면 녹이 슨 듯한 질감의 물결들을 보곤 했죠 빛바랜 물고기 떼를 목격하기도 했죠 끔찍하게도 일렁이던 우리의 그림자 위로 물비린내가 나던 그곳에는 자주 빈 페트병들이 여러 개 떠오르기도 했어요
속이 텅 빈 채로 유영하는 여러 배들의 그림자들을 봐요 여러 영혼들의 모습을 봐요 모서리부터 서서히 닳기 시작하는 제 모습을 바라보며 떠나는 죽기 위한 여정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검붉게 물들어가는 강을 건너면 죽은 자의 영혼이 깨끗해진다2)고들 하던데 가라앉지 않아서 비어버린 저 몸체들을 보면 내 몸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요 저 속에서 나도 영원히 살아갈 것만 같아요
저 속에서
나도 살기 위해 죽어가야 하는 걸까요
동전을 던지며 빌던 여러 소원들이
어느새 내 입안에서 녹슬어가고 있어요
빛바랜 은빛으로 빛나고 있어요
1)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죽은 다음 저승의 강으로 향한다. 저승의 강에는 총 5개의 강이 존재하는데, 그 첫 번째 강인 아케론에서는 뱃사공 테론에게 뱃삯을 줘야 그 강을 건널 수 있다고 한다.
2) 역시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저승의 강 중에서 3번째 강인 피리플라게톤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불태워져 정화된다고 하는데, 이를 모티브 삼아 붉은 강으로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