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속 인물들을 살펴보며
‘갈매기’는 언뜻 보기에 매우 잔잔한 작품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어쩌면 긴장감을 한 번에 끌어 당길만한, 커다란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꽤 재밌었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다수의 인물이 나오는데에도 불구하고, 상황이나 공간, 그리고 오브제에 관해 각각 자신들만의 태도를 선명히 드러낸다.
먼저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인물들의 목표이다. 주인공인 뜨레플레프는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니나는 여배우가 되겠다는 목표가 존재한다. 끝내 마지막장에서 그들의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지만, 정작 그들의 생활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큰 갈등이 아니었어도 뜨레플레프에게는 뜨레고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열등감이 그리고 니나에게는 연극을 할 수 없는 불우한 가정사라는 결핍이 존재했다. 극 내에서 둘은 이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이뤄냈다. 하지만 그들의 결핍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에 사로잡혀 뜨레플레프는 죽음을 그리고 니나는 회피를 선택했다.
왜 굳이 이렇게 인물을 만들었을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저 두 인물 외에도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버리지 못하는 아르카지나. 좋은 소설을 창작해야겠다는 강박에 빠진 뜨레고린. 도시로 나가고 싶은 소린 등 대부분 인물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바에 사로잡혀 오히려 목표와 결핍이 역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인물은 미샤라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뜨레플레프를 사랑한다는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했지만 현실에 안주한 선택을 한 미샤는 마지막에 메드베첸코와 가정을 꾸린다. 비록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결핍에 사로잡히지 않은 인물인 미샤와 그렇지 못한 인물들은 과연 어느 쪽이 더 행복한 결말을 맺은것일까. 작중 내내 인물들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게 쏠쏠한 재미이지 않았나 싶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었던 것은 상징이었다. 가장 큰 상징으로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갈매기. 뜨레플레프가 갈매기를 죽이는 장면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 후반부 니나가 하는 대사 중에서 자신을 갈매기로 표현하는 그 모습은 결국 사냥에 한순간에 죽어버린 갈매기의 시체를 극을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뜨레플레프와 니나의 관계 그리고 그 두 인물의 최후를 암시해주는 역할도 어느 정도 해주기 때문에 명확하게 왜 이 작품의 제목이 ‘갈매기’인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상징이 있는데, 바로 ‘카드놀이’와 ‘호수’다. 먼저 카드놀이 경우 작품에서 한 세 번 정도 언급되는데 나는 마지막 장에서 작가가 정말 이 상징을 활용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뜨레플레프와 니나는 비극의 순간에 다다르고 있는데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유희, 그러니까 카드놀이에 빠져있다는 점. 또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 역시 의미가 없는 것들이라는 점. 단 그 한 장면을 통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호수’의 경우, 니나라는 인물에게 있어 계속 공간의 의미가 변화하는 게 보여서 덕분에 인물파악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우한 가정사 덕에 호수는 벗어날 수 없는 힘든 공간이었다가 뜨레고린을 만나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환상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등 대사나 행동 외에 배경으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낸 것 같아서. 상징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던 희곡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