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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감자 Oct 25. 2021

선생님, 저는 너무 갈대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에세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암흑기가 존재할 것이다.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은 듯 하지만


수난시대, 즉 암흑기는

여러 차례,

어떨 땐 길게- 어떨 땐 짧게

존재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암흑기는

고등학교 3학년.


그때의 나는 마치 경주마처럼

주변을 살피지 못했고

정말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부리는

곧 터지기만 기다리는

아궁이 속

못난이 감자 같았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학교 밖 벤치로 불렀다.


여름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었다.


선생님과 나는 벤치에 앉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야, 너는 하루에 하늘을 얼마나 보니? 오늘은 하늘을 봤니?"

"네?"

"오늘의 하늘을 봤냐구."

"아니요."

"자, 지금 봐봐."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고?

그래 이런 하늘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구름도 새하얗다.

새하얗다는 색감이 저런 거구나.

폭신폭신하다는 촉감은 저런 모양을 하고 있겠구나.'


그때 올려다본 하늘은

나에게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언제 하늘을 봤더라?'


한참을 올려다보다가

선생님은 가만히 나에게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나무야, 갈대 같은 사람이 되거라."

"......"

"너는 너무 대나무 같아.

대나무가 좋아 보이지만 너무 곧아서 한번 충격을 받으면 그대로 부러지잖아.

부러지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어.

너는 갈대 같은 사람이 되렴.

그래야 시련이 와도 흔들리긴 하겠지만 부러지진 않잖아."

"......."


"그냥, 오늘은 하늘 좀 같이 보자고 불렀어. 자, 봤으니 이제 들어가 보렴."


교실로 돌아가면서

나는 다시 뒤를 돌아 선생님을 봤다.


선생님은 벤치에 혼자 남아

가을 하늘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자존심을 굉장히 부리고 있었다.


누구한테 지는 것이 싫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입학원서를 맘껏 내지도 못했다.


지원할 때마다 드는 원서비용도

부담스러웠다.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아

꾹꾹 속에 눌러 담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하늘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갈대 같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


아직도 그때를 회상하면

속이 울렁거린다.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욕심이 앞설 때마다


갈대. 갈대. 갈대.

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뾰쪽한 사람보다는 둥근 사람이 되자.

그래야 굴러가기 쉽잖아.


그런데 그렇게 10년을 넘게 살다 보니

이제는 너무 갈대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러려니 하는 시시콜콜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NO'라고 말하고 싶은데

'NO'라고 하면 죄책감이 든다.


선생님이 말한

갈대 같은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매일매일 하늘을 볼 줄 아는

아름답게 흔들리는 갈대였는데.


나는 쉽게 흔들리는

뿌리 없는 갈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선생님, 저는 너무 갈대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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