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팬스, 인스타그램 구독자 전용 서비스 등 선정적 콘텐츠 활개
과거 ‘문란함’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 쿠데타로 독재 정권이 들어서며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회적 질서와 체제 유지라는 명목하에 연예인, 방송인 등 공적 인물의 복장 규제했다. 더 나아가 성인 남성들의 장발과 여성들의 치마 길이까지 단속하기 시작했고 특히 여성의 경우, 무릎 위 20cm라는 기준에 걸리면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처벌받았다. 이런 시대상을 미뤄봤을 때 유흥업 종사자, 룸살롱 접대부, 매춘부 등의 직종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사회의 그림자 속 ‘음지’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언론은 이들을 ‘문란’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1970년대는 급진적 산업화·도시화와 남성 중심 직장 문화로 인한 회식·접대 문화가 커지던 시기였다. 또한 이 직종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기에 이들에게 원색적 비난을 해선 안 된다. 다만 그들은 ‘돈을 벌고 가난을 탈출하기 위한 자신들의 선택이 최선이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가 변했다. 더 이상 문란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수면 위로 올라온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의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가 성행하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대표되는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이들은 SNS에서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많은 팔로워, 구독자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비례적으로 인플루언서들은 광고비, 협찬비 등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일부 SNS 사용자들은 ‘문란함’으로 돈을 벌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바로 성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유명한 온리팬스다. 그곳이 그들의 무대이자 돈을 쓸어 담는 장소다. 온리팬스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콘텐츠 유료 구독 플랫폼'이다. 콘텐츠 창작자가 구독자에게서 직접 수익을 얻는 구조로 플랫폼은 채널만 제공하고 수수료만 챙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대부분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활동하기 때문에 해당 플랫폼을 구독하지 않더라도 다른 플랫폼에서 무료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후킹 포인트'로 기능해 유료 콘텐츠를 구독하게 만드는 것인가.
바로 ‘문란함’이다. 성별을 불문하고 의도적으로 선정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 심지어 해외의 경우 알몸까지 업로드하는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인다. 캐나다 국적의 10대 크리에이터는 해당 플랫폼을 통해 2주 만에 1500만 달러 (약 209억 원)을 벌어들인 뒤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여성들을 ‘실패자’라고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와 궤를 같이 하는 SNS가 인스타그램의 ‘구독자 전용 서비스’다. 일부 인플루언서는 이 서비스에 속옷만 입은 영상을 올리거나 선정적인 사진을 업로드해 자신이 설정한 금액의 구독료를 받는다. 팝콘TV, 팬더TV 등 성인 플랫폼에서 금전적 후원을 받기 위해 선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방송인들 역시 이 서비스로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성적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그들에게는 사생활의 영역 안에서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존재한다. 즉 특정 플랫폼에서 성적 이미지를 활용해 활동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이를 통해 개인 브랜딩과 수익 창출을 도모하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 주도적 창작 활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켜온 지조와 절개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성이란 단순한 쾌락이나 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친밀성과 관계, 책임이라는 요소가 긴밀히 연결된 삶의 중대한 가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생활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성을 돈과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환원하며 스스로의 존엄을 깎아내리고 있다. 결국 이는 인간을 상품화하는 자기 파멸적 행위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사회 전반의 성적 질서를 교란하고 성을 바라보는 공적 기준을 무너뜨린다. 성을 단순히 경제적 자원으로 소비하는 태도는 사회·윤리적 성문화를 타락시키는 패악(悖惡)이자, 건전한 사회를 훼손하는 파괴적 요소로 작동한다. 결국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행해지는 이들의 활동은 공동체적 도덕성과 사회·윤리의 근간을 뒤흔드는 방종적 행위다.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아야 함은 분명하지만 그 자유가 사회 전체의 문화와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자유가 아닌 방임이자 진취가 아닌 퇴행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문란함은 더 이상 수치스럽지 않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