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2024.11.07. 작성

by 윤찬우

18층,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내가 17년 동안 살면서 본 가장 높은 아파트 층수였다. 17살이던 나에게 신축 아파트는 아파트 치고 꽤 높은 건물이었다. 학교에 가니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부럽진 않았다. 17살임에도 불구하고 산전수전을 겪은 나로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니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전부 끌어모아 기어코 신축 아파트로 떠날 준비를 했다. 좋은 교육 환경, 안전한 주거환경을 위해 떠난다는 이유들은 나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그럼 내 지난 17년의 추억들은?’이라는 의문점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의문점들을 뒤로 한 채, 부모님의 결정을 따라야만 했던 고등학생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아련했던 추억을 그리워했던 시절을 잊었는지 신축 아파트의 편안함에 녹아들었다. 역세권을 필두로 넓은 방, 개별난방은 옛집에 대한 추억을 지워버렸다. 한국의 ‘정 (情)’ 문화를 중시했던 나는 이웃들에게 이사 첫날부터 환한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예, 네’ 따위의 대답뿐이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인사를 하면 받아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지치고 귀찮은 표정을 기본 값으로 한 차가움만 돌아올 뿐이었다. 차가운 감정을 나눈 탓일까, 나 역시 인사하는 것을 포기하고 차가워지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그제야 옛집이 그리워진 나였다. 사실 어쩌면 난 옛집이 그리웠던 것이 아니라 따스했던 이웃들 간의 정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사소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것, 눈이 내리면 아무 약속 없이 빗자루를 들고나와 도로를 쓸기 시작하는 일들은 따스함을 나누는 일이었던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임에도 난 아직 옛집에 대한 추억을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살아간다. 두꺼비에게 말하고 싶다.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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