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2 상

. 자녀교육 2-

by 자한

자녀교육 2-상

우리 아들이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교육을 받았던 부분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아들은 88년 7월에 집안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 아들은 초창기에 엄마의 손에서 길러야 했는데 아내가 교직생활을 하던 터여서 할머니 손에서 양육되었다. 거의 1년 6개월 정도였다. 주말을 이용해 엄마가 아기를 돌보려 했지만 낯선 손길에 서먹서먹해했던 모양이다. 엄마와 아빠를 만날 수 있는 때는 주말뿐이었다. 아빠는 아들이 태어나기 3개월 전쯤에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엄마는 여전히 고흥 두원면에서 중학교 수학교사 3년차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승진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핑계로 자주 부산에 오지도 않았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에는 엄마가 돌보기도 했다. 제대로 엄마의 손에 컸던 때는 3살 때쯤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90년경 아내가 서울의 학교로 전근이 되고나서였다. 90년 9월에는 둘째를 임신한 터여서 육아휴직을 3년간 신청했는데 그때는 아들이 제대로 엄마의 품에서 자랄 수 있었다. 90년 10월쯤부터 6개월 정도는 제주도에서 세 식구가 가족으로 처음 같이 생활을 히기도 했다. 주말마다 제주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며 놀러 다니기도 했다. 91년 3월에는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기 위해 광주광역시의 처갓집에서 생활했다가 산후조리를 마치고 4월경에 상경하기도 했다. 아빠도 제주생활 1년을 마치고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어렸던 시절에 아들의 이름이 제대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해서 대리인을 통해서 개명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몇 년 지나 어느 정도 성장을 한 후에는 집 근처의 어린이집에 맡겨 생활하도록 했다. 93년부터 동생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고 등하교를 했다. 도보로 이동했는데 동생과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다녔다. 유치원도 겸하고 있던 어린이집이었는데 유치원과정까지 그곳에서 마쳤다. 연도말에 학예회를 했는데 아들이 양복차림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사회를 보았다. 여자아이와 둘이서 사회를 보았던 것이다. 부모님들을 모셔놓고 장기자랑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는 식의 공연이었다. 다음 해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95년도였는데 아들은 초등학교로 등교했고 동생은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해에 집을 좀 더 넓은 곳의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집이 학교와는 좀 더 멀었는데 도보로 다녔다. 동생의 경우는 마침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어 친구어머니가 차로 등원시키고 하원을 시키는 식이었다. 우리도 차를 중고로 구입해서 엄마가 학교 출근하는 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종합의견은 심성이 곱고 착하여 거짓이 없이 성실하게 행동하며 자기의 생각을 중심으로 새롭게 발전시켜 나갑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의 행동특성이다. 온순하고 조용하며 웃는 낯으로 순진성이 있고 친구들과 잘 지냅니다. 3학년 시절에는 개교기념 그리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청소년 미술협회에서 주최한 전국학생미술대회에서 특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인 98년도에는 모형항공기대회 글라이드 초등 2부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4학년 행동특성은 언어와 행동이 바르고 심성이 곱고 착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생활합니다. 5학년때에는 서울동작교육청 99년 청소년 과학 경진대회에서 에어로켓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행동특성은 약속은 잘 지키고 봉사정신이 투철하나 스스로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서울학생탐구발표대회의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학년때에 청소년 과학경진 교내 모형항공기 제작 및 날리기 대회에서 글라이더 초등 3부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6학년 시절에는 녹색소년단의 단원이 되어 열심히 자전기타기를 생활화하였고 여름방학 때에는 전국일주를 완주하여 완주증과 학교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국토종단 확인증을 살펴보면 “ 녹색소년단에서 실시하는 국토종단 통일기원 국토사랑 자전거 대행진 행사에 참가하여 인간사랑, 국토사랑, 환경사랑 정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동시에 극기심과 모험심을 기르면서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완주하였으므로 이 증을 수여합니다” 로 기록되었다. 코스는 서울-수원 –오산 –평택 – 죽산- 천안 – 공주 – 논산 – 강경- 익산 –김제 – 부안 – 고창 – 영광 – 함평 – 무안 – 목포 – 해남 – 완도 – 제주 –서귀포 –제주 – 서울이고 거리로는 665킬로미터 6박 7일( 200. 7.16. ~7. 22) 통일기원 국토사랑 자전거의 대행진이다. 녹색소년단원은 완주 후에는 한라산을 등반해서 백록담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하산해서는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하며 일주일간의 피로를 씻어내기도 했다. 아들이 전국국토대장정을 하는 기간 동안 엄마가 함께하며 동행했고 응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해외행사로 백두산을 여행하기도 했고 일본의 구마모토성, 후쿠오카, 아카다 타워, 시모노세키, 나가사키 등을 둘러보며 선진문물을 살펴보기도 했다. 설악산의 최고봉 대청봉을 오르기도 했고 속초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초등학교시절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웠기에 영법의 최고 수준이 접영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특급 수영실력을 갖추기도 했다. 아들은 여름에는 수상스키를 배우기도 했고 겨울에는 스키장에 가서 강습을 받고 스키를 배워 수준급의 실력을 연마했고 스키를 넘어 보드를 연습하기도 했다. 스케이트로 배워서 곧잘 겨울철에 스케이트에 빠지기도 했다. 아들에게 지원한 부분은 최대한 본인이 하고자 하는 부분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의 적성에 적합한 분야가 아닌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피아노 학원도 열심히 보냈지만 제대로 실력을 향상하지 못했던 것은 자녀교육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충분히 어린 시절에 운동과 자전거 등으로 단련된 탄탄한 체력은 성장 발전에 토대가 되었으며 심신을 단련하고 극기할 수 있는 자신감, 어려운 일은 해낸 자존감을 높이는데 기초가 될 수 있었다. 아들 둘은 데리고 아빠가 목욕을 같이하는 것은 주말의 한 즐거움이었다. 아이들의 등을 밀어주고 때를 밀었던 추억이 진하게 남아있다. 아들들의 등쌀에 못 이겨 바나나 우유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이고 귀가하던 길이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보다 나은 환경에서의 자녀교육을 시킬 수 있었어야 했는데 열악한 경제환경 등과 맞물려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었던 듯하다. 아들의 앞날이 더욱 빛나고 훌륭한 엘리트로 성장해 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녀교육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