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학이, 민주주의가 헛되지 않았음을.
2024년, 돌연 예상치도 못한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바로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이로써 한강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간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창의성을 요하는 부분이나 과학 연구 부문에서는 다소 부진한 성과를 보여왔기에 우리에게는 모두 희소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는 노벨상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Prize motivation: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The Novel Prize (2024)
“그녀의 강력한 시적 산문은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의 삶 속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 문장을 통해 한강이라는 작가가 어떠한 문학 활동을 통해 무엇을 추구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우울함인 것인지, 차분함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경계선 속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을 목도하고 자신만의 말로 이를 풀어낸다. 그리고 그 문장은 연약해 보이면서도 묵직하고 강력하다.
한강이라는 작가의 소설에 대해 들어왔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접해본 적은 없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노벨 문학상의 수상 공신으로 뽑히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첫 소설 작품 “여수의 사랑”을 감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에 한강의 “여수의 사랑”에 관해 더욱 자세히 다루는 글을 올리도록 하겠다!)
위의 두 권 모두 광주 5.18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사건이라는 무거운 사건을 다루고 있어 읽기 두려웠지만, 두려운 만큼 직시해야만 하는 현실이었기에 읽어보았다.
”소년이 온다“ 속 민간인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젊음을 다하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 고문 이후 무엇이 옳은 것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워진 그들의 삶을 읽노라면 담담하게 그들의 삶을 관찰하며 기록하고 관조하는 듯한 그녀의 소설이 감사하고 이 소설을 지금에야 읽었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한국 문학 작가들에게 바치며 다시 한번 한국 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다. 한때 한국 문학이 너무나도 좋아서 국문학도를 꿈꿨던 만큼, 그녀의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 알기에 국문학을 위한 그 말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이제야 국문학이 인정받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울컥하였다.
문학성이 높은 작품이 실로 많은데 한국어로 쓰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혹은 정말 수려한 문장력과 뛰어난 표현으로 구성된 작품이지만 번역하는 과정 속에서 그 가치가 나타나지 못한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같은 문학도로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결국 국문학 대신 독문학을 택하였으나, 독문학을 공부하며 번역하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같은 과 교수님들께서는 괴테의 유명한 독문학 작품 “베르테르의 젊은 슬픔”의 해석에 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해석해야 하는가, ”베르테르의 젊은 슬픔“이라고 해야 하는가 등 미세한 번역과 해석의 차이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한국어는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되어 있고, 색감과 관련된 단어가 많아 번역 시 곤혹스럽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샛노랑, 노리끼리, 노릇노릇, 찐노랑을 번역하기란 쉽지 않다. 외국 문화와 달리 한국 문학을 통괄하는 ”한“이라는 감정 또한 한국인이 적합한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일이고,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 또한 두말할 것 없이 정확한 느낌을 전달하기 곤란하다.
그런데 한국어와 한국 문학의 의미 전달을 위해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 속에서 한강 작가 본인이 검토하였기에 해외에 작품성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 더욱 감사한 마음이었다. 나는 취미로 번역을 하고, 원서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국문학의 성장과 번영을 위해 나는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역사의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연약하고 무기력한 듯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녀의 문장은 2024년 우리 문학의 과거를 대신하여 수상하고 위상을 높이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을 어루만지는 소설 “소년은 온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같은 해에 비상계엄령이 약 40년 만에 다시 선포되었다.
다음 날인 12월 4일 비상계엄령이 다행히 해지되었지만, 이후 환율이 높이 치솟았고, 여러 국가에서는 한국 여행 경보를 발령하였다. 미국 국방부 측에서는 주한미군 주둔 여부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으며, 계엄령 선포는 추후 트럼프 행정부가 미군 주둔비용 인상 혹은 주한미군 철수의 빌미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정치의 이념에 관계없이 전시 상황이 아닌 시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혼란을 준 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위하고 대한민국을 위한 행동인 것인지,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잘 살게 해 준다든지, 생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민주주의에 경각심 없이 민주주의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간다면 현재와 같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다시 되찾을 수 없을 것이고, 과거에 평화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희생했던 자들의 피와 눈물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군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잊지 말되 당연히 우리의 안보를 위해 신경 쓰고, 군인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기에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그들의 노고는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한 이들이 명분에 맞지 않는 곳에서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함이지, 국회 출입을 막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노벨문학상을 정치색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며 국민으로서 국가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의 안보 또한 걱정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묘안을 모색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다시 한번 이는 정치 이념과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국익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적은 글이며,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혹시 불편하시더라도 부정적인 댓글은 지양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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