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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탄생1.

-굴포천 골목에, 프랑스 서점을 열기까지-

by noodle

오래 전부터, 내 공간을 꾸미고 싶었습니다. 흔히 까사***로 시작하는 잡지들을 볼 때면, 한없이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뾰족뾰족한, 혹은 둥글 넙적한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집을 짓고, 커다란 식탁에서 멋드러진 음식들을 잔뜩 차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저녁은 오래고 오랜 나의 로망이었습니다. 인테리어나 미술을 전공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을 차치하고, 내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풀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딱히 존재하지 않던 학창 시절, 잡지 한 켠에 실린 타인의 취향을 훔쳐보는 일은, 꽤나 가슴뛰는 은밀한 비밀이었습니다.

아꼈던 파란 벽지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가지게 된 나의 집, 비록 전세라는 이름으로 잠시 머물게 된, 20년도 훌쩍 전에 지어진 낡은 신혼집이었지만, 21평 복도식 아파트에 나는 애정을 듬뿍 쏟았습니다.


선명하게 파란 벽지를 고르고, 낡디 낡은 나무 몰드에는 친언니와 함께 의자를 두고 올라가 페인트 칠을 했습니다. 많이 정들고 듬뿍 애정을 쏟은 곳이었지만, 나의 로망을 이루기에는, 글쎄요.

어른 네명만 들어앉아도 터질 것 같은 구획이 나누어지지 않은 좁고 어두운 부엌은, '초대'에 걸맞은 곳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이때 샀던 공간박스는 집을 바꿀때마다 한두개씩 모아 제법 큰 책장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정말 많이 담았던 나의 첫공간.

정말 좁은 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친구들을 불러모으긴 했어요.

이 곳에서 참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역시 나의 '로망'에 어울리는 공간은 아니었어요. 나는 커다란 식탁을 가지고 싶었으니까요.


두 번째 집은, 좁은 곳에 대한 나의 한이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나는 좁은 집에 좀 질려있었어요.

아이가 태어났고, 작은 생명체 하나 만으로도 집안은 가득 차게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복직을 앞두고 계획에 없이 갑작스럽게 하게된 이사였습니다. 친언니가 살 집을 알아보다가 덜컥 내가 계약을 한거에요. 처음엔 20평대의 집을 보았지만 작은 공간에 마음까지 오그라붙어있던 나는, 동향이지만 가격이 꽤 괜찮은 30평대의 집을 덜컥 계약했습니다. 이곳에도 참 많은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새롭게 도배를 하고 내 나름의 취향을 녹여보려 노력했지만, 이제 더이상 전세집 천장 몰딩을 페인트로 칠할 만큼의 에너지는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타협으로 지낸 공간이었어요.

KakaoTalk_20250314_111553251.jpg 그래도 6인 식탁에 상을 차리는 일은 역시나 즐거웠어요.

그리고 드디어 세번째 집에서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나의 로망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집의 성당뷰가 꽤나 마음애 듭니다.

아직 인테리어에 대한 나의 욕망은 풀어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깔끔한 인테리어에, 내 손으로 바꾼 조명과 벽지, 성당이 보이는 뻥 뚫린 창을 마주한 6인 식탁, 이제서야 제법 '다이닝'에 적합해 보였습니다.


어른의 나는 어느새 내 공간을 꾸며 사람을 초대하는일에 신명이 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신명이 났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몰라요.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들을 불러 부족하지만 내 스타일이 녹아있는 상을 차려내는 일은 정말 멋졌습니다. (요리는 할 줄 모르는 나입니다. 그저 세팅을 할 뿐-)

나는 그만큼, 공간도, 사람도, 술도 좋았습니다.

망고(망고는 내 딸의 애칭입니다.) 의 어린이집에서 만난 엄마들과, 술도 사람도 좋아하는 나는 곧잘 우리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육아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그렇듯,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함께 모여 술한잔 기울이는 그 시간을 모두들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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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꽤나 독특한 엄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모임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일상이 바빠, 아이들의 모임에는 함께 해 본 적이 없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네 아이의 엄마였고, 전업 워킹맘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처럼 술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함께 파티를 여는 나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맥주 한캔을 소소히 비우는 스타일이었달까요.

그녀와 나는 꽤나 잘 맞았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그녀를 초대해 예쁜 테이블링을 하는 것이 좋았고, 그녀도 흔쾌히 초대에 응하며 우리는 그렇게 가끔, 술한잔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와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도, 나도 일상에 바쁜 사람들이었고, 어쩌다 가끔 시간이 맞으면 늦은 저녁을 함께 나눌 뿐 우리는 여전히 존댓말을 쓰는 적당히 친밀한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녀는 프리랜서 통역사였습니다. 남편이 프랑스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프랑스어 채널을 맡아 패널로 일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와 연결되면 나의 공간에 대한 욕구를 진짜로 펼쳐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몰래, 상상해보곤 했습니다. 그때만해도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질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고보면 인생은, 정말 생각하는대로 흘러가는걸까요?


그러던 9월의 어느날, 그녀가 대뜸 나에게 가게를 보러가자고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나는 그녀와 함께 상가를 보러 갔습니다. (나는 원래 집을 보러가거나 상가를 보러가는 일을 좋아합니다. 타인의 공간이 너무 궁금하니까요!) 상가라기에도 무색한, 초등학교 앞 낡은 가게였습니다. 한참 공간을 둘러보던 그녀는, 나에게 동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책방을 열거라며, 내가 그 공간을 꾸며주었으면 좋겠다고 준비되지 않은 내 마음에 공기를 한껏 불어넣었습니다.


내 책방의 시작은, 그렇게 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믿음, 그리고 나의 공간 욕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꼭 성공할 것 같았고, 그녀보다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그런 그녀의 옆에서라면 나도 함께 성장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녀 옆에서 나의 공간욕을 마음껏 뿜어내 보고 싶어졌습니다.


2023년 11월 25일, 그렇게 책방리브레리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오래오래 살아남아 이 공간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초보 책방지기의 생존기를, 들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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