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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생존기4.

-첫외출

by noodle

주말에만 여는 책방에는 사람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금요일에는 하루 종일 책방을 지키다가 외롭게 퇴근하기도 했고, 가끔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아 구경시켜 드려도, 구매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언니가 신촌에서 프랑스 거리음악축제가 열린다며, 참가해 보자고 했습니다.

우리 책방의 모습을 인형의 집처럼 만들어보았습니다.

2024년 6월 21일. 그렇게 우리 책방의 공식적인 첫 외출 일정이 잡혔습니다. 책방이 너무 멀어서 오기 힘드시다는 손님들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어렵게 휴가 날짜를 맞춰두고, 부쓰를 꾸밀 오브제도 만들었습니다.


행사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계획에 없던 시나리오. 차에 책을 실어야하는데, 야속하게 내리는 비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책을 젖지 않게 옮겨야했기에 한권 한권 비닐 포장을 하고, 트렁크에 실어 나르는데, 문득 스치는 생각; 웨건을 가져가야 하는거 아닐까? 하지만, 두고 온 웨건이 눈에 밟혀 집에 들른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늘어나는 네비게이션의 숫자에 마음이 콩닥콩닥.

행사 장소인 신촌 연세로와 공영 주차장까지는 큰 길을 건너야해서, 비를 헤치고 비닐을 씌운 웨건을 양 손으로 밀며 거리를 내달렸습니다. 20여분 가까이 늦게 도착한 행사장에는 다행인지, 비때문에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비오는 날인데 책방 부쓰를 찾아준 손님들이 감격스러워, 사진 한장 남겨 봅니다.

슬슬 오후가 되자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여기는 역시 서울인걸까요? 하루 종일, 사람 구경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책방과는 달리, 비가 오는 거리에도 오가는 사람이 꽤나 많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외진 곳에 자리잡은 시골 마을 책방인지 절감했습니다.


옆 부쓰를 찾아 따뜻한 뵈프 브르기뇽을 한그릇 사들고, 와인 한모금에 비내리는 신촌 거리를 바라보자니, 마음이 녹진녹진 해졌습니다.

나의 20대를 지냈던 거리의 풍경들이, 한편으론 낯설고, 한편으론 정답게 공기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첫 외출은, 제법 따뜻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오고가는 분들께, 책방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때보다 훨씬 많은 책을 팔 수 있었고, 우리의 존재를 알린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안녕, 내년에 또 올게요.

우리의 작은 책방은, 그렇게 조금씩, 느리지만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정말로 근사한 어른 책방이 될 수 있는 걸까요?

희망을 상상한, 마음 부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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