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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원 주미영 Dec 19. 2022

퀴즈로 풀어보는 서울의 5대 궁궐  이야기

서울에 궁궐이 이렇게 많다고?

학생들이 시험성적을 잘 받으려면 문제풀이를 많이 해 봐야 한다.

서울의 5대 궁궐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오늘은 문제를 만들어 봤다.    

  

1.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법궁으로서 역대의 임금들이 가장 오랜 기간 기거했던 궁은?

  1) 경복궁  2) 창덕궁  3) 창경궁  4) 덕수궁  5) 경희궁     


2. 5대 궁궐 중 면적이 가장 넓은 궁 이름은?

  1) 경복궁  2) 창덕궁  3) 창경궁  4) 덕수궁  5) 경희궁


3. 5대 궁궐 중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유일하게 등재되어 있는 궁 이름은?

  1) 경복궁  2) 창덕궁  3) 창경궁  4) 덕수궁  5) 경희궁     


위 세 문제 중에 정답을 모두 맞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방금 글을 쓰면서 대학생인 두 딸에게 물어보니 다 빵점이다. 이럴 수가... 한 문제도 못 맞히다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이 문제를 접했다면 백 점 맞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 이토록 무지하다.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서울에 궁이 이렇게나 많다고? 위 다섯 개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궁궐 지식은 우수한 편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궁 하면 보통 경복궁을 떠올린다.  북악산을 뒷 배경으로 남으로는 남산, 좌청룡 우백호인 낙산과 인왕산을 두르고 있는 18.6Km의 서울 도성 성곽길, 그 안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조선 최초의 궁인 경복궁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창덕궁을 비롯해 창경궁과 덕수궁, 경희궁에 대해서는 들어는 봤지만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 경복궁이 서울의 대표 궁궐이니 조선 임금들이 가장 오래 기거해 온 궁이자 면적도 제일 넓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보기 좋게 모두 틀렸다. 정답은 위 세 문제 모두 창덕궁이다. 놀랍지 않은가?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하며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한양(서울)으로 수도를 새롭게 이전하게 된다. 당연히 임금이 거처할 궁이 필요해 지금의 경복궁을 처음으로 창건하게 된다. 태조 4년인 1395년의 일이다. 당시 세운 전각은  390여 칸으로 조촐한 규모였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은 고종 때 이르러 전각이 7225칸으로 늘어나는 등 규모가 확대 복원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다시 훼손돼 현재의 경복궁은 고종 당시와 비교해 40%밖에 복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창덕궁의 축조 시기는 경복궁 창건으로부터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은 두 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켜 조선의 세 번째 왕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혈육과 정적을 제거하며 피를 본 곳이 경복궁이다. 그래서일까? 경복궁에 살기 싫어 자신이 정무를 보고 기거할 궁을 짓도록 지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창덕궁이다. 1405년 때의 일이다. 태종은  국가적 의전과 의례는 경복궁에서, 창덕궁은 일상 업무를 보거나 기거하는 곳으로 삼아 두 궁궐을 모두 사용했다. 이렇게 이궁 체제로 가다 200년이 지나 임진왜란 때 두 궁궐이 모두 불타게 되는 수난을 겪는다. 광해군(1610년)은 역대 왕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창덕궁을 복원했는데 그때부터 19세기 고종이 중건할 때까지 경복궁은 방치되고, 대신 창덕궁이 마지막 왕인 27대 순종까지 약 270년 동안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경복궁이 유일하게 단독 법궁 역할을 한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마치 둘째 부인에게 사랑을 빼앗겨 허울만 그럴듯한 정실부인처럼 말이다. 실제로 역대 조선의 왕들이 가장 좋아한 궁은 창덕궁이었고 그래서 가장 오래 기거한 궁이라고 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

창경궁은 창덕궁이 창건된 후 약 80여 년이 지난 1484년(성종 15), 돌아가신 선왕들의 세 왕후를 모실 거처가 필요해지자 옛 수강궁 터에 지었다. 수강궁은 제3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임 후 머물기 위해 1418년에 건립한 이다. 즉 궁궐 안에 여러 대비(세조, 덕종, 예종의 왕후)가 생존하면서 필요에 의해 전각을 지어 넓혀나갔던 것이다. 창덕궁과 창경궁 두 궁궐 모두 경복궁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궐이라고 불렀다. 창덕궁 관람 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한 관람객이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해설사님! 그런데 창덕궁과 창경궁 뭐가 다른 거예요?”     


그때 괜스레 내 볼이 빨개지면서 나의 무식이 들킨 것 같아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도 얼마 전까지 잘 몰랐으니까. 일단 우리 궁궐을 보러 갈 때는 역사 공부를 조금 하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 말이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우리나라 궁궐도 큰 피해를 입었다. 조선 건국 200년이 되는 이때까지 존재하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소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의주로 피란 갔던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가 한양에 돌아오니 모든 궁궐이 불타서 거처할 곳이 없게 되자 잠시 월산대군의 옛 사저를 행궁으로 쓰게 된다. 이곳이 바로 경운궁(후에 덕수궁이라고 함)이다. 선조에 이어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는 창덕궁을 수리해 거처를 옮기게 되고 경운궁은 더 이상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조선 말기인 고종황제 시절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이때 경운궁은 비로소 정전인 중화전을 세우는 등 궁궐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고종에 이어 대한제국 황제에 오른 순종이 아버지가 기거하는 이곳을 덕에 의지해 장수하시라는 의미로 덕수(德壽)라는 이름을 지어 바치면서 덕수궁으로 불리게 된다.

      

다음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궐이라고도 불리는 경희궁에 대해 살펴보자. 광해군은 건물 짓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창덕궁 복원은 물론, 왕기가 서린 곳이 있다는 한 술사의 말을 듣고 왕기를 누르기 위해 또 하나의 궁궐을 짓게 되는데 바로 경덕궁(경희궁)이다. 경덕궁은 광해군 9년인 1617년에 착공, 1623년 완공됐다. 처음에는 경덕궁이라고 했지만 영조 때 이름을 경희궁이라고 고쳤다. 5대 궁궐 중 가장 많이 훼손되었고 찾지 않다 보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자 이제 두 번째 문제인 궁궐의 면적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가장 면적이 넓은 궁 하면 언뜻 경복궁이 생각난다. 하지만 경복궁의 총면적은 46만㎡이고 창덕궁은 55만㎡, 창경궁은 21만 ㎡, 덕수궁은 9만㎡, 그리고 경희궁은 10만 ㎡이다.   

   

경복궁은 다른 궁에 비해 터도 광활하고 전각들도 웅장한데 어떻게 창덕궁의 면적이 더 넓을까? 경복궁은 각 정전을 남북 일직선으로 배치해 전체적으로 반듯하며 권위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창덕궁은 여러 전각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직접 가 보면 알 수 있듯이 아기자기하면서 운치가 있다. 특히 왕과 왕족들의 휴식 공간이었던 후원에 가보면 아담한 호수도 여러 개 있고 각각의 건축물들이 특성이 있으며 자연 친화적으로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후원이 전체 면적의 약 60%를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반듯하게 조성된 비어 있는 땅이 적어 보이고 넓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창덕궁 관람을 위해서는 문화해설사와 함께 하는 후원 영역을 별도로 예약해야 하고 입장료는 궁 관람비 3천 원 외에 추가로 5천 원을 더 내야 한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에는 모두 무료이고 한복을 입고 입장해도 무료이다.      


여기서 한 가지, 5대 궁궐을 모두 가고 싶다면 3개월 이내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는 통합권을 사도 좋겠다. 나 역시 그랬다. 1만 원을 주고 5대 궁궐 통합권을 구입하면 창덕궁 후원 포함 5대 궁궐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이왕 관심을 갖는 거라면 이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사람 사이에도 사랑이 싹트려면 자주 만나야 한다. 궁궐도 마찬가지! 나는 지난 두 주에 걸쳐 창덕궁을 두 번 방문했다. 시험 보기 전 예습과 복습을 모두 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집에서 우리 궁궐 관련한 책을 펼치니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마치 궁궐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이제 3번째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순간이다.

어떻게 경복궁을 빼고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까?      

‘창덕궁이 아름다운 궁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후원 덕분이다. 창덕궁 후원은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나아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정원의 미학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편 1- p215)      


네모반듯하게 인위적으로 짓지 않고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정겹고 친근한 모습으로 궁궐들을 앉혔기에 큰 점수를 받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홍준 교수는, 서울은 5대 궁궐의 도시이기에 아예 처음,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시 5대 궁궐을 통합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조선 500년 역사와 구한말, 그리고 21세기 지금 이 순간까지 한 나라의 수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울에 이렇게 아름다운 궁궐이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나 있음을 우리는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냥 경치만 구경하며 감탄하기에는 우리 조상들께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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