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 인생 후반전에서 최고의 작품을 완성하다
자산어보를 남긴 정약전(1758~1816)이 누구? 하는 사람들 많을 것 같다. 정약용 하면 자동적으로 <목민심서> 쓴 사람 하는데 말이다. 정약전은 바로 정약용의 네 살 위 형이다. 조선후기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삼 형제는 유명했다.
조상은 8대가 잇달아 옥당(玉堂, 홍문관)에서 벼슬을 지냈을 정도로 좋은 가문이었다. 정약전은 1783년(정조 7년)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고, 1790년(정조 14년) 증광별시에 응시해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성균관 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의 관직을 역임했다. 정조는 ‘준걸한 풍채가 정약용의 아름다운 자태보다 낫다’라며 총애했다고 한다.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15권)
정조가 죽은 후 순조 1년인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는데 형제들 모두 서학교도(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참형을 당하거나 유배를 떠나게 된다. 정약전의 나이 43세, 그리고 정약용은 39세 때였다. 다음은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로 떠나면서 동생 정약용에게 하는 말이다.
“도성에서 뱃길로 구백리, 섬 둘레가 삼십오 리, 가호 수는 283호, 남자가 361명, 여자가 344명.”
흑산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있는 섬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뱃길이 험해 예로부터 유배의 섬으로 알려졌다. 바다와 산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섬 이름을 흑산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홍어, 전복, 우럭, 성게, 돌김, 가오리, 멸치 등 해양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이고 서해에서 고기잡이하던 배들이 태풍을 만나면 이곳으로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며 한때 파시가 열렸던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정약전은 안타깝게도 끝까지 귀향하지 못하고 유배지 우이도에서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5년 동안의 유배생활 중 흑산도에 머물며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련 서적인 <자산어보>를 저술하게 된다. 총 227 종의 바다생물을 관찰, 기록했는데 특히 18종의 상어 내부 구조를 상세하게 기록해 현대 수산전문가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자산어보를 저술할 당시 실제로 흑산도에 살았던 청년어부 창대라는 인물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청년어부 창대와 나누는 대화다.
(정약전) “청어가 동해가 아니고 서해에서도 잡히느냐?”
(창대) “동해 청어는 등뼈가 일흔네 마디고 여그 청어(호남산)는 쉰 세 마디인 것이 다르지라”
(약전) “너는 물고기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아느냐?”
(창대) “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응께요.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
공부만 하던 양반 가문의 선비가 흑산도로 유배 와서 하루하루 괴로운 심정으로 보내고 있는데 물고기에 대해 줄줄 읊어대는 청년 어부를 보고 호기심 많던 그의 가슴은 얼마나 뛰었을까. 그는 죽음의 섬이라는 유배지에서 고통과 좌절 대신 새롭게 만나는 것들에 대한 탐구의 시간들로 채워나갔다.
설경구 씨(정약전분)와 변요한 씨(장창대분)가 주연한 영화 <자산어보>는 2019년에 촬영되었고 2021년 3월에 개봉되었다. 코로나 기간이었기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21년과 22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실제로도 약전은 동생과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약전은 강진에서 유배 중인 동생 정약용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나도 유배 잘 왔네. 호기심 많은 인간에게 낯선 곳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책을 한 권 쓰고 있네. 소나무로 인한 섬사람들의 고통을 목도하고 시작한 책으로 제목을 ‘송정사의’라고 붙였네. 이제부턴 물고기 연구에도 착수하여 훗날 어류도감을 내 볼 생각이네. 마침 섬에서 물고기에 매우 해박한 젊은이를 만났네. 헌데 내 이놈한테 한방 제대로 먹었네. 내가 이제까지 성리학, 노자, 서학 가리지 않고 공부한 것은 한마디로 사람이 갈 길을 알고자 했던 것인데 이 놈이 물고기에 대해 아는 것만큼도 알아낸 게 없지 않은가. 하여 이제부터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공부에 눈을 돌리기로 했네. 사물로 나를 잊어볼 생각이네.”
대역죄인이라는 이유로 청년어부 창대는 처음에는 정약전을 멀리한다. 하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명저 <자산어보>는 탄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약전과 창대 두 사람의 가는 길은 너무나 달랐다. 창대를 향해서인지 아님 암울했던 당시 시대를 향해서였는지 약전은 이렇게 외친다.
“이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이냐? 백성이냐?
나는 성리학으로 서학을 받아들였는데
이 나라는 나 하나도 못 받아들였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주자는 참 힘이 세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죽음의 순간에서도 끝없는 호기심으로 탐구하는 노력! 고통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즐기는 그의 삶이 전해지는 것 같아 영화를 보고 있으니 나의 가슴도 뛰는 것 같다. 인생 후반전에서... 이제 내려갈 일만 남은 것 같은 인생 2막에서 과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혹 같은 물음을 던지는 분들에게 흑백영화로 담담하게 풀어낸 영화 <자산어보>를 추천해 본다.
그리고 나의 인생영화 목록에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