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만도 하다. 지난 금요일부터 주말 내내 16부작 <왕이 된 남자> 드라마를 OTT로 정 주행했다. 2012년에는 이병헌 류승룡 주연의 영화 <광해>로도 만들어져 1,200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었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이주호 작가의 소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원작으로 했다.
드라마는 선조가 죽어가며 율(경인대군)과 세자 이 헌(광해)을 대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선조)“율이 네가 장성하는 것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참으로 애통하는구나.”
(선조) “내 피눈물로 지켜 온 용상을 네깟 놈에게 물려준다 생각하니 분통이 터져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네 놈이 나에 대한 원망으로 저 어린 경인대군을 핍박할까 그것이 걱정이다. 이노옴~. 약조하거라. 아우를 지켜 주겠노라고.”
이 헌이 부르르 떨며 아버지 선조에게 말한다.
(이 헌) “전하! 부탁은 그리하는 게 아닙니다. 눈물로 애원하고 손이 발이 되게 비셔야지요.”
(선조) “이놈~~~ 내 지켜보마. 네 놈의 세상은 어찌 되는지. 네 놈은 어찌할지... 돼먹지 못한 놈!”
'왜 그러셨어요? 전하아.. 저세상 가시면서 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셨으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흑흑...' (나의 생각)
실제로 선조와 광해군은 사이가 나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나며 당시 18세였던 광해를 세자로 책봉하고 분조라는 명분으로 왜군에 맞서 나라를 위해 싸우라고 명한다. 이에 광해군은 강원도, 함경도 등지를 다니며 군사를 모으고 병사들을 위로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얻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당연히 격려하고 세자로서 대우를 했어야 하는데 욕심 많았던 선조는 자신의 아들마저 질투한다. 급기야 첫 왕비가 죽자 51세의 나이에 19세의 계비를 들여 영창대군을 낳고 그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무리수를 둔다. 하지만 선조의 뜻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물거품이 된다.
선조가 죽자 광해는 조선의 제15대 왕으로 등극한다. 그리고 자신의 배다른 형제, 아버지가 죽어가면서 간절히 부탁했던 영창대군을 죽이고선조의 계비였던 인목대비는 서궁으로 유폐시킨다.
광해군 8년, 역모의 소문이 흉흉하니 임금께서 은밀히 이르다. “닮은 자를 구하라. 해가 저물면 편전에 머물게 할 것이다.” 숨겨야 할 일은 조보에 남기지 말라 - 광해군일기 2월 28일
소설 원작자는 왕과 왕실의 모든 일들을 기록한 승정원일기 15일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토대로 상상력을 동원해 가짜 왕 광대 하선을 만들고 왕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스토리텔링한다. 역사적 사건들을 모티브로 했지만 허구가 가미되었다.
조선 역사를 이야기할 때면 늘 당파싸움이 빠질 때가 거의 없는데 광해군 시절도 예외는 아니다. 붕당정치가 극에 달하고 반대파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의심으로 잠도 못 자고 점점 폭군이 되어가는 광해! 하지만 광해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광해군의 업적 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은 바로 대동법 시행이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많이 언급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신하들이 대동법 시행을 반대할 때 하선이 외친 말이다.
“쌀 열 마지기를 가진 자에게서 쌀 열 섬을, 쌀 한 마지기 가진 자에게서 한 섬을 거두어들이는 게 그게 무엇이 나쁘오?”
그 외에도 광해군은 용비어천가를 인쇄, 보급하고 동의보감을 편찬하도록 했으며 명과 청나라(후금) 사이에 중립외교를 펼쳐 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창덕궁 복원공사를 마무리 짓고 왕권 강화를 위해 또 다른 경덕궁(경희궁)을 착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대의 실책은 바로 폐모살제(廢母殺弟)! 그가 폭군으로 불린 결정적인 이유다. 15년 동안 왕위에 머물다 명나라와의 사대부 의리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기에 이른다.
다시 드라마 이야기다. 하선(광대)이 말한다.
“힘을 갖고 싶소.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진짜 임금이 되고 싶소.”
도승지 이 규는 실제 임금 이 헌이 점점 미쳐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바닷가에서 독살한다. 그리고 하선을 진짜 임금으로 만들기로 다짐하고 이 헌과 똑같은 상처를 만들기 위해 가슴팍에 단검을 꽂으며 말한다.
“광대 하선은 죽었다. 이제부터 네가 이 나라의 임금이다.”(이규)
다음은 필자가 뽑은 16부작 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최고 장면이다. 14화에 나온다.
(이규) “내 실은 불안했다. 두려웠다. 누구든 용상에 앉아 권력에 취하게 되면 순식간에 성정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두려웠다. 너마저 그리 될까 봐. 내가 또 실패할까 봐. 이제는 분명히 알겠다. 하선이 너는 그 분과 다르다는 걸. 다르기에 너를 선택해 놓고 너를 온전히 믿지는 못했다.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한 일인지 너를 통해 깨닫는구나.”
그리고 하선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어지는 말
(이규) “전하! 소신 이제 더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하 된 도리를 지켜 전하를 온전히 믿고 섬길 것이니 소신의 지난 불찰을 모두 용서해 주십시오. ”
그리고 절한다. 이에 하선도 따라서 머리 숙여 절한다.
“이제부터 존대로 예를 갖추겠습니다.”
제주도 행원리 포구(어등포) 앞에는 <광해 임금의 유배, 첫 기착지>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이렇게 씌어 있다.
‘,..(중략)광해군은 연산군과 달리 성실하고 과단성 있게 정사를 펼쳤으나 당쟁의 와중에 희생된 임금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해군은 처음에는 강화도로 유배되어 1년 반 만에 그곳에서 아내 폐비윤 씨와 폐세자, 세자빈 모두를 잃는다. 그리고 다시 제주도로 이배(移配)된다. 제주에서 1641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권좌에 있었던 세월보다 무려 3년이 더 긴 18년 동안 유배의 시간을 보냈다.
‘정치란 무엇일까?’ ‘진정한 왕의 모습은?’
<광해, 왕이 된 남자> 작가는 아마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 우리 모두가 바라는 왕의 모습을 하선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