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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원 주미영 Nov 24. 2022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

퇴직을 앞두고 왜 이런 일이? 

              

퇴직을 한 달여 앞두고 있는 어느 날 아침, 부서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현재 맡고 있는 프로그램 <문화공감> 방송 시작 부분에서 진행자 오프닝이 30초 두 번 중복 방송되었다는 것이다. 즉 방송사고가 난 것이다. 진행자는 베테랑 아나운서인데 오프닝 멘트를 두 번 했을 리는 만무하고 만약 실수해서 다시 녹음했다면 내가 편집을 했을 텐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송사고가 난 것이다. 물론 그날 녹음할 때 평상시 하던 방식대로 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긴 했으나 삼십 수년 방송을 해 온 나로서는 라디오 녹음방송은 그냥 몸이 알아서 할 정도로 익숙한 일이다. 부서장도 컴퓨터 시스템 오류가 아닌가 의심이 된다며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컴퓨터라는 것이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니 말이다. 어쨌든 결론은 최종 점검을 해야 되는 건 PD이기에 나의 실책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사고가 있기 얼마 전 최근 방송사고가 많으니 각별히 주의를 당부한다는 부서장의 전달이 있었기에 때마침 일어난 나의 사고는 정도의 크기를 떠나서 매우 심각성을 띠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부서장은 다시 직원들에게 문자를 띄웠다.     


“최근 방송사고가 빈발하여 R편성부에서 MD 매뉴얼을 매우 디테일하게 업데이트했습니다. MD들이 더욱 신경 써서 사고방지를 위해 애쓸 것이고요. 편집 상태 및 제작 시간 등에 문제가 있을 시 1) 담당 피디가 출근해서 재편집. 2) 담당 피디가 연락 안 될 경우 또는 출장 등으로 부재중일 경우 해당 팀장이 재편집. 3) 해당 팀장마저 부재중일 경우 MD가 편집으로 기준을 정했습니다.”     


‘참내 퇴직을 한 달 앞두고 이게 뭐람.’     


후배들에게 그리고 청취자들에게 정말 면목이 없게 되었다. 그날 저녁식사 후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미국 드라마 <매니페스트>를 보게 되었다. 몬테고 비행기 828기가 사라지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나타난다. 승객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렸는데.... 승객들 수만큼 사연도 가지가지... 모든 것들이 변해버린 상황에 닥친 이야기다. 


5년 후 돌아와 보니 약혼자는 자신의 절친과 결혼해 버렸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이상한 알 수 없는 능력으로 범인들을 아주 쉽게 잡는 능력 있는 여경이 되고... 그런가 하면 불치병으로 희망이 없던 한 소년이 5년 후 의술의 발전으로 생명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스토리 등 여러 사연들을 소개하며 드라마는 전개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하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나에게 암이 발생했을까? 그날의 교통사고만 없었다면... 그날 거기에 안 갔더라면’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후회한다. 하지만 <매니페스트>에서 계속 들려주는 메시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이다.


왜 하필 퇴직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 평소 잘 생기지 않던 방송사고가 일어났을까? 그날 저녁 우연히 보게 된 미국 드라마 <매니페스트>가 답을 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실수로 인해 사고 매뉴얼이 강화되어 앞으로 더 큰 방송사고가 줄어든다면 이 또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이 아닐까? ‘그래 좋게 생각하자’라며 나를 위로했다. 방송인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사고가 나려니까 아무리 조심해도 나더라고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요.”     


어떤 일이든 예고하고 오는 것은 많지 않다.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된다. 물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나 혹여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나 마음이 절망적일 때 이 글귀를 떠올리면 어떨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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