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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원 주미영 Dec 13. 2022

위기일발! 아이 수송 대작전

은퇴의 평온이 깨진 날

2022. 12. 09   

     

 전날 송년 모임이 있어서 좀 피곤했는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시침은 어느새 숫자 9를 향해 가고 있었다.


‘회사에 안 가는데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퇴직하니 참 좋다. 잠 실컷 자고.’


워킹맘으로 살아온 30여 년 세월, 지난 시절의 아침 시간은 늘 전쟁이었다.  출근 준비에 가족들까지 챙기느라 허겁지겁 달려 나간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창 밖 경치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차 한 잔을 음미하며 여유 있게 하루를 열어가니 더없이 좋다. 안방에서 거실로 나오니 집안은 조용했다. 가족들 모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들 하니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커피 한잔 마시고 혼자 이런저런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9시를 넘어 분침이 30분을 넘어갈 때쯤 갑자기 둘째 아이 방문을 한번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즘 학기말고사 기간인데 학교를 갔는지? 늦잠을 자고 있는 건지?


‘잠자고 있나?’ 혼잣말을 하며 방문을 여니 둘째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이제 일어나?”하곤 뒤돌아서는 순간!


“엄마 큰일 났다. 나 10시 반부터 오늘 시험인데”라고 소리쳤다.


그리곤 곧장 쓰러질 듯 화장실로 뛰쳐나가 칫솔을 입에 문 채


엄마 나 택시 타고 가야 할 것 같아”


순간 택시 타고 가는 것보다 내가 자동차로 데려다주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 수송 대작전' 한 것이 뭐 한 두 번인가? 대입 시험을 앞둔 고3과 재수 시절에는 나의 두 번째 잡(job)이었을 정도다.


“엄마가 데려다줄게.”


자동차 키를 찾아들고 아이와 현관문을 나서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평소에는 순식간에 내려오던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오늘따라 굼뜨게 내려온다. 마음이 급하니 더 오래 느껴지는 걸까? 드디어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니 이번에는 지하 주차장에 가기 전까지 층마다 멈춰서는 것이 아닌가.


‘참내. 뭐야.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도 도와주질 않네.’


속이 탔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날아갈 수도 없고. 핸들을 잡으며 스마트폰을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얼른 내비 켜고 목적지 입력해!”   


시동을 걸고 눈에 힘을 주며 앞만 보고 달렸다. 집에서 시험장소까지 30분 걸린다는 표시가 나온다. 아이 말에 의하면, 평소 지하철을 타고 가면 50분 정도 걸려 수업 시작 전 1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자동차 시동을 건 시각은  9시 50분 전후였던 것 같다. 10시 전에 출발했으니 내비게이션 표시대로라면 10시 30분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잘 만 가 준다면 여유 있게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도로에 차가 많다.

  

아이는 어젯밤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고 묻지도 않는데 말한다.


‘어제 알람을 해놓고 잤어야지. 시험 볼 애가. 아님 가족 카톡에 남겨놓지 그랬어? 깨워달라고!!! 으이그’


이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꾹 눌러담았다.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책에다 눈을 박고 있는 아이에게 잔소리해봤자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참자.’


아침 시간에 자동차로 아이 학교까지 가 본 적이 없어 길도 익숙지가 않다. 이 길은 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주로 막히는지 어디로 가면 지름길인지 도로 사정을 잘 안다면 좀 더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텐데 그냥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강대로에서부터 삼각지역을 지나 서울역까지 일직선으로 달렸다. 그리곤 남대문로에 들어서는 순간 뒤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또 한 번 소리쳤다.


“어머나아아---”


가슴이 두 배로 또 철렁했다.


"뭐야 또 이번에는?"


뒤돌아보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모기만 한 소리로 나를 보며 이야기한다.


“계산기를 안 가져왔어.”


시험을 보려면 계산기가 있어야 하는가 보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학교에 문구점 없어? 거기서 사는 수밖에 없지 뭐.”


그런데 시간상으로 문구점에 들를 여유가 없지? 이걸 어쩐담?

혹시 길 가에 문구점이 있는지 살피며 운전을 했다. 아뿔싸! 해찰하다 차선을 잘 못 들어가는 바람에 다른 길로 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도착 시간이 2분 오버됐다는 시간 사인이 보인다. 속은 더 타들어 간다. 일분일초도 아까운 시간에 길을 잘못 들다니... 다행히 아이는 급하게 친구에게 연락해서 계산기를 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한시름 놓는 시각, 얼마 전 지하로 만들어진 율곡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위로는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숲이 보였다. 율곡로를 지나니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현판이 왼편으로 뚜렷하게 다가왔다.


‘저 앞에서 옛날 정조대왕이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고 했는데... 그 그림이 뭐였더라?’


‘지난번 창경궁 왔을 때 저 앞에서 유튜브 찍었는데...’


정신없는 상황에 별 생각을 다하네.  

구불구불 언덕길을 올라가니 드디어  도착이다.  


“휴우 우” 긴 숨을 내 쉬었다.


시험 시작까지는 3분이 남았다.

퇴계인문관 바로 앞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해 약 50여 미터를 남겨두고 차에서 내린 아이는 100미터 달리기를 했다. 어쨌든 오늘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둘째는 정확하게 10시 30분에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만족하지는 않지만 자알 봤다고 한다. 엄마 덕분에. 엄마가 은인이란다.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F학점이 나오게 되고 그러면 전체 학점에도 지장이 있어 내년 교환학생 신청도 어려워질뿐더러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벌어진다며 엄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문자로 뿅뿅 하트를 날렸다.


“얘야 이제 좀 자유롭게 해 주면 안 되겠니? 엄마 은퇴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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