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원 주미영 Nov 18. 2022

김치와 어머니

김치는 어떻게 하고?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서 누군가 김치를 꺼내 둥글고 빨간통에 가득 담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난 순간 괴성을 질렀다.    

   

"김치이이이. 우리 집 김치이."


옆에서 자던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휴우.”


꿈이라서 다행이다.      


‘생뚱맞게 웬 김치 꿈을? 아하! 어제 어머니가 김장 고춧가루를 보내셨지. 조금만 늦었으면 단골가게에서 못 살 뻔한 고춧가루를 어렵게 구해 택배로 보내셨다는 전화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집은 11월 말이나 12월 초 연례행사로 김장을 한다. 결혼 초에는 어머니께서 직접 담가다 주셨지만 아이들 생긴 후부터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직접 오셔서 담그신다.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라서 그런가? 어머니도 해 주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 또한 그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혼 30년 차가 되는 지금까지도 김장하면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고 연세가 올해 84세임에도 젊은 시절과  비교해 손맛의 변화가 없다.


김장을 연례행사처럼 했지만 남자들 군대 무용담처럼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방송기자인 남편이 2007년 인도 뉴델리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갔을 때의 일이니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덥고 낯선 나라 인도에서 생활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던 당시, 외국에서 한국 음식을 해 먹기 위해서는 모든 재료를 한국에서 공수받아야 했다. 김장도 예외는 아니다. 배추와 대파 등 몇몇 야채와 과일을 빼고는 모든 주재료를 한국으로부터 가져와야 했다. 당시 어머니께서 육수재료부터 청각, 냉동 생새우까지 바리바리 준비해서 김장철에 맞추어 뉴델리로 오셨다.

       

“요즘 김장을 누가 해? 김치 사 먹으면 되지.”      


한국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인도는 아니다. 인도에서 김장은 더욱 필수다. 해외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마 이해할 텐데 외국에 있을수록 한국 음식을 더 그리워하고 자주 해 먹는다.    

 

두 딸이 할머니와 함께 김장하는 모습

                     

필자가 인도 가정부와 함께 배추를 절이는 모습


타국에서 하는 김장, 한국에서 할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뉴델리 거주 첫 해에는 김장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1년이 되어가던 즈음, 어느 주재원이 지난겨울 배추를 잘못 골라 김장 후 냄새가 나 먹을 수 없어 내다 버렸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난 페트병에 물을 담아 여러 마켓을 다니며 배춧잎을 직접 씻어 맛보며 심사숙고해서 골랐다. 그리곤 정수기 물로 집에서 직접 소금에 절였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할 수가 없어서 약 한 달, 두 번에 걸쳐 나누어했다. 김장이 끝나고 냉장고에 가득 찬 김치 통을 바라보며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했는지 그때 이 세상을 모두 얻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회사에 사정이 생겨 1년 앞당겨 특파원 생활을 접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김장을 한 후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3월 초, 출근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에서 서울로 들어오라는데?”     


  “........”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     


  “김치는 어떻게 하고?”      


  “아니 무슨 김치 걱정을 하고 그래? 애들 학교를 걱정해야지?”      

  

그날부터 약 두 달 반 동안 그 전에는 아껴먹던 김치를 매 끼니마다 새로 꺼내 먹고, 서둘러 익혀 지져먹고, 부쳐 먹고, 끓여먹고, 그리고 아낌없이 주변에 퍼주었다.      


 “세상에나 생새우를 넣어서 만든 김치라서 그런가?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인도에서 처음 먹어보네.”     


 주변 엄마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십수년이 흘렀어도 낯선 나라에서의 김치에 대한 추억은 이렇게 기억 한편에 각인되어 있다 김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올해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 작년까지는 오셔서 담가주셨는데 요즘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걱정이다. 2-3년 전부터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내가 해주는 김장 올해가 마지막일지 몰라.”  


  김치 꿈으로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부스스 눈을 비비며 혼잣말로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어머니, 김치는 없어도 괜찮지만 어머니는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야 해요.”     

이전 01화  퇴직 후 첫날의 단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