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by 마농

그래. 이 일 역시 5학년 말에 있었던 것 같아. 그때의 나는 점점 밖을 나가지 않게 됐던 걸로 기억해.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상이 즐거워 보였거든. 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뭔가 밖을 나가고 싶어 졌어. 운명이었을까. 그렇게 난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발을 옮겼지. 오랜만에 눈에 담은 밖, 노을을 반쯤 가린 산과 추수가 다가온 황금빛 논은 참으로 아름다웠어. 나는 그런 황금빛 논두렁을 지나 늘 가던 길을 따라 걸었어. 그리고 나타난 밭의 풍경은 여전히 생명을 품고 있었어. 그곳에서 호미를 들고 계시던 할머니조차도 한결같았지. 너무나도 당연한 풍경이었기에 나 역시 예전처럼 할머니께 인사했어. “안녕하세요!” 근데 내 인사를 받은 할머니의 표정이 뭔가 평소랑 좀 다르더라. “그래. 근데 니는 누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뭔가 이상함을 느꼈었지. 그래도 일단 답했어. 할머니가 연세가 있으시니 못 알아보셨을지도 몰랐으니까. “저는 한수요! 저어기 윗집에 사는 김철수 아들이요!” 그래서 난 손으로 우리 집 방향을 가리키며 할머니가 들리도록 크게 말했어. 내 말을 들은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어. “철수 아들이가?” 이때까지도 난 그냥 할머니가 잘 안보이셔서 그런 거구나 싶었어. 근데 참 대화를 이어 갈수록 이 묘한 감정이 점점 그 덩치를 불리더라. 할머니는 분명히 아버지를 아셨지만 날 모르시더라고. 이쯤에서 난 깨달을 수 있었어. 그래서 난 어색한 웃음을 띠며 대화를 이어나갔지. 나름 평소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던 거 같아. 하지만, 이어진 말에 당시의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어. “그래. 그래서 니는 누고?” 똑같은 질문. 방금 답한 질문. 하지만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나는 전과 같이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했지. 그리고 내 말이 끝나고 이어진 말에 나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어. “그래. 니 이름이 뭐라고?” 그래서 난 그냥 웃고만 있었지. 너무 어려서 그랬을까.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한 참 당황하고 있던 찰나 웬 처음 보는 중년의 여성 한 분이 다가와서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어. “엄마… 왜 또 밭에 나와 있어….” 그녀가 하는 말을 보니, 아무래도 딸인 것 같더라. 그래서 난 그녀에게 인사를 하곤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 여쭸지.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내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더라. “우리 어머니가 요즘 많이 아프셔. 그러니까 이제 내가 모셔가야 하는데 괜찮겠니?”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차마 티를 내지 못하겠더라.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집이 있는 방향으로 발을 돌렸어. 오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난 어머니께 안기며 한마디 말을 내뱉었던 거 같아. “엄마는 나 잊으면 안 돼?” 그런 갑작스러운 내 말에 어머니는 잠깐 당황한 기색을 보이셨으나 이내 웃으며 말씀하셨어. “당연하지. 엄마가 어떻게 우리 아들을 잊어.” 그제야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웃음을 지을 수 있었지. 그리고 필연인지 다음날부터 내가 그 할머니와 다시금 만나는 일은 없었어. 추후 이야기를 듣자 하니 병원에 입원하셨다 하더라고. 이제 와서 떠올려 보니 결국 그 모녀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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