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붕어빵은 누구나 지나가다가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사 먹는 서민 간식이다. 빵틀 안에 반죽을 붓고, 달달한 팥 앙금을 듬뿍 올려놓고서, 달그락달그락 빵틀을 뒤집어가며, 노릇노릇하게 구운 붕어빵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하지만 나에게는 붕어빵의 구수하고 달콤한 맛을 음미하는 대신에 눈물의 빵이 되었었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 속에 머물고 있는 시리고 시린 인생겨울이 있었다.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와 곤궁하게 되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상황이었기에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구워 팔게 되었다.
어느 초겨울 날이다. 친구가 구해다준 손수레를 시작으로 해서 싼 값으로 중고 빵틀을 샀고, 붕어빵 장사로 경력 5년 차인 동네 아저씨에게 어려운 가정사정을 털어놓으며, 반죽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배웠다. 장사할 준비는 장소만 정하면 되는데, 동네 근처를 몇 바퀴나 돌아봐도 눈에 띄는 곳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장사를 하려고 하니, 어색하기도 하고 용기가 나지 않아 며칠을 그렇게 보내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있잖아 우리 동네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런데... 니네 동네에 할 만한 곳이 있지 않을까?”
그런 내게 친구는 와서 찾아보라고 한다. 내 동네도 아니고 낯선 동네를 내 어찌 알고 찾는단 말인가. 어차피 모르는데 대충 봐서 자리를 잡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쉽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우리 동네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마음이 조금은 편하게 느껴졌다. ‘그럼 내일부터 해보는 거다’ 혼자 각오를 다지고 나니 없던 용기가 솟구쳐 올랐다. 내일부터 시작할 장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 팥을 삶아 달달하게 설탕에 재워두고, 열두세 가지 재료들을 혼합해서 반죽도 만들고, 빵틀을 깨끗하게 닦아놓으니 하루가 고되게 느껴졌다.
손수레는 친구네 집 담에 세워두기로 미리약속 했다. 택시에 짐을 싣고 친구네 동네로 달렸다. 첫날 장사를 시작하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떨려왔다. 어디다 자리를 잡을까. 잠시 생각하는 중인데 손수레를 밀고 가는 나의 발길은 친구 집을 한바탕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 골목 모퉁이를 막 돌아 서는데 여기가 좋겠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모퉁이 담벼락에서 발길을 세웠다. 가스를 켜고 빵틀이 달궈지기를 기다리며 잠시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첫 손님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은 두 근반 세 근반 방망이질이다. ‘근데 빵을 구워 놓은 게 없는데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미처 내려놓기도 전에 그 남자가 다가와 대뜸 하는 소리는 이랬다. “동사무소 건물 앞에서 대놓고 노점행위를 하면 되겠어요!” 라며 빨리 이동하라 한다. 갑자기 온몸이 달아오르며 너무 창피하였다. ‘하필 동사무소 건물 앞에다 이게 뭐람! ’
재빠르게 철수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나 또 다른 장소를 찾아보며 길을 가는데, 주차장 같은 곳에 노점 장사꾼들이 장을 벌여 놓은 게 보였다. 거기 한쪽을 차지해서 가스를 켜고 빵틀을 달궈 빵을 굽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자 젊은 남자가 아이를 안고 와서 붕어빵을 달라고 하였다. 첫 손님이었다. 붕어빵이 다 익었겠다 싶어 빵틀 뚜껑을 열고 빵을 꺼내려는데 떨어지질 않는다. 진땀을 흘리며 빵틀에 붙어버린 붕어빵을 떼고 있던 내게 그가 하는 말, “집에서 연습을 더 하고 나오셔야겠어요” 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기다려 준다.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어 한 마리 더 얹어 주었다. 첫 손님이 간 뒤로 붕어빵은 심심찮게 팔리고 있었다.
붕어빵을 팔고 있는 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즈음이다. 50십대 가량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얼굴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나타나서 다짜고짜 내게 앙칼지게 쏴 붙인다. “게나 고둥이나 다 나와서 장사하니 장사가 돼야 말이지...” 하며 빨리 다른 곳으로 가라고 어찌나 해 대는지 악종이 따로 없는 듯싶었다. 서러움은 온 전신에 비구름을 몰고 찾아왔다.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참기 힘든 모멸감을 억누르며 버티고 있었다.
그러고 가는 아줌마를 어이없게 지켜보며 어디로 가는지를 봤더니 길 건너편 작은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간다. 낯선 사람이 와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텃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상생이란 허용할 수 없는 이기적인 단면을 볼 수 있었으며, 살기가 각박한 세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친구와 친구 남편이 찾아왔다. 하루 있었던 일들을 모두 쏟아 놓았다. 친구 남편은 “ 재영 엄마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에요.”하며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서러움에 찬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그동안 온실 속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온 나를 발견하였다. 세상은 벌거벗은 광야와 같았고 굶주린 사자와 같았다. 하루를 지나면서 경험한 일들은 세상과 나를 분명히 일깨워주는 시리고 시린 교훈적인 시간이었다.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오면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붕어빵은 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인생의 쓴맛을 깨우쳐 줬던 고마운 스승이었다. 그리고 붕어빵을 사 먹으면서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