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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un 30. 2022

꿈의 이면

6月 : 꿈을 넘어서며



A는 벗어나고 싶었다.

A는 자기보다 남을 위하는 게 편했다.

마음을 한 번 다치니 다음이 무서워졌다.

두 번 다치니 아픈 게 조금 덜했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픔의 아픔을 거듭하다 돌아보니

티 내지 않고 아픔을 참아내는 법에만 익숙해졌다.

과연 A의 삶은 나아졌을까,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꿈은 A를 짓밟곤 한다.

 



A는 꿈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모든 일에 온 맘을 다했다. 또한 A는 사람을 좋아했다. 본디 정 주는 게 삶의 목적으로 태어난 사람처럼 주변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였을까. 분명 사람들은 A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A의 진심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A가 반짝반짝 빛나 보였던 걸까. 사람들은 때때곤 A를 질투했고 A를 비난했다. A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오히려 더 괜찮은 척을 하며 모른 척하려 했다. 그러는 동안 A는 상처가 많아졌다.


 A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A는 그들과 함께 꿈을 꾸었고 본인의 꿈도 꾸었다. 그러던 과정에 차질이 생겼다. 버티던 A가 무너지게 된 것이었다. A는 함께 꿈을 꾸던 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 도움이 미성숙했던 시절의 그들과 A에겐 독이 되었다. 그들은 A를 타깃으로 삼아 비난했다.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은 A의 잘못이 되어있었다. 그 관계들 속 A의 잘못도 있었겠지만 순전히 A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A는 어렸기에 꿈으로 가득 찬 본인을 믿었지만 그것은 허상이었으며 A의 욕심이었다. 또한 A는 견고하지 못해서 모든 일에 확실함이 부족했다. 그런 부족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A의 꿈은 그날 이후 완전히 부서졌다. A가 사랑하던 사람들로부터 돌아온 내리꽂는 말들과 평가의 시선은 A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A에게 전화로, 대면으로 계속해서 A가 작아지게 만들었다. A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무게였으며 일방적인 괴롭힘이었다. 이후 A는 모든 일의 원인을 자기로부터 찾는 습관이 생겼고 눈물이 많아졌으며 확실하지 못한 자신을 깎아내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A가 일어날 수 있는 수단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A는 의지할 수단을 찾아 헤매다 본인도 모르게 연인으로 버팀목으로 두었다. 하지만 수단이라는 말처럼, A가 연인을 통해 비어 버린 마음을 채우려고 했기에 또 마음은 부서지곤 했다. 다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상대를 지치게 했다. 물론 A의 연인이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연인에게 좋은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사람은 A의 상태를 잘 알았지만 A를 더욱 불안하게 했고 외롭게 했다. 그러나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A는 가장 아팠던 연애의 원인이 본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에 머물러 아파하기도 한다. 기억은 잊히고 덮여가지만 사라지진 않기 때문이다. 그쯤의 A는 마음이 찢어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꿈은 없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했다. 야위었고 말라갔다. 우는 날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 누구도 A를 도와줄 수 없었다. A도 그 사실을 알았고 도움을 요청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A에게도 A의 따뜻한 본성을 알고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마음은 본인이 채워 나가야 하는 법이다.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던 위태로운 A에게 꿈이 생겼었다. 그 꿈을 위해 일어섰다. 활기를 점점 되찾아갔다. 그렇다고 이전의 기억을 잊은 건 아니었다. 그저 묻어두었을 뿐이었다. 앞으로의 A를 위해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일을 했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었다. A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A의 잘못을 떠올리고 반성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A를 주변의 많은 사람은 엄연한 악인이나, A는 그들의 악함에 대해 떠올리기보다 본인의 문제를 찾기에 급급했다. 본인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강했다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하며 묵묵히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A는 꿈을 다시 찾았고 돌아온 듯했다. 하지만 꿈은 쉽게 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A에게 미래와 꿈은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A에게 행복과 기대와 꿈은 사치와 같았다.


 해방을 꿈꾸었지만 꿈을 꿀 때마다 더욱 괴로워 지기만 했다. 꿈에 닿을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A는 타인과의 인간관계만 힘드니 괜찮다 생각했다. 하지만 A의 가정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사랑하는 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내 아픔쯤은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A는 A를 계속 깎아내렸다. A는 A의 상처와 아픔을 홀로 바라보았다. A의 아픔을 공유하기엔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수많은 밤을 숨죽여 울었다. 그 사이사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다정한 사람들과 늘 함께했지만 그런 꿈같은 시간 후에 돌아오면 남는 것은 홀로 견디고 버텨내는 시간이었다.


A에게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텅 비어 버린 공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나아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악몽이 찾아오길 수십 번. 거듭되다 보니 A는 눈물도 가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세상에는 힘든 사람이 너무도 많으니 A 정도의 아픔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꾹꾹 비집고 나오는 아픔을 눌러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웬만한 아픔에는 무뎌졌다. 하지만 이전에 타인과 함께하며 A가 보냈던 진심 다한 마음들이 약점이 되어서, A에게 공격으로 돌아오던 상처의 흔적들은 A의 곳곳에 기생하며 A를 괴롭혔다. 그래서 A는 A의 약한 모습이 타인에게 비춰지면 나를 결국 무너뜨릴 것이라 겁먹고 본인의 속을 더욱 감췄다. 그렇게 더 단단해지려 했다. 묵묵히 마음을 눌러가며 살아내다 보니 A의 꿈이 변했다. 이전엔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삶을 꿈꾸었다면, 지금의 A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 졌다. 하루하루 누리고 있는 평범함과 안정감도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A는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고통의 시간들을 부정하고 외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A가 찢긴 마음에도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던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불행이 찾아올수록 자신을 학대하고 더욱 모질게 다뤘다. 찢어진 마음을 스스로 더 찢어가면서 A는 다시 조금 더 사소한 새로운 꿈들을 만들어냈다.


 A는 이런 자신의 상태에 가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의문에도 답은 없다. 옛 기억의 잔상이 남겨버린 흔적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 올라 A를 괴롭히곤 한다. A는 묵묵히 그 상황을 참아낸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불안의 마음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A는 아마 이렇게 다가올 더 큰 아픔들을 견뎌내며, 또 찾아오는 다른 고통들에 익숙해지며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새로운 꿈들을 만들어내며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A가 강한 사람이라, 단단한 사람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렇게 보인다면 되었다고 A는 생각한다. 그 강함과 단단한 사이에 얼마나 많은 꿈들이 짓이겨졌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A가 홀로 산산조각 난 마음을 한 조각 씩 찾아 붙였는지 몰라주어도 A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A는 그렇게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아니, 늘 다른 자리에서 버텨내고 있다.



by.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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