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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Nov 12. 2023

회복 불가능한 사랑 : 사랑의 본질

사랑에 대하여 1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읽고

“성재가 떠났다.“

“내게는 텅 빈 집과 아픈 고양이,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이 남았다.”


소설은 이 두 문장으로 시작된다.


고양이의 치료비가 필요했으며 성재와 나눈 사랑의 기억을 “쓸모없다”며 지우고 싶어하는 수진과 사랑의 기억과 감정을 전달받아 남편을 더 사랑하고 싶은 영인은 감정 전이를 선택한다.


 수진은 “영인이에게 이 감정을 다 줘버리고 나면 이젠 이게 슬퍼지지 않을까, 그럼 성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쿵 무너지는 것 같은 이 감정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방문한 감정이식 센터에서는 간단한 전이 전 감정 적합도 분석을 요구한다. 그에 따라 Donor(수진) Recipient(영인)가 된 둘은 감정전이를 위한 심층조사지를 서술한다. 수진은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이별하게 된 전 남자친구 성재, 남편이 조건만남을 했고 그 충격을 더 큰 사랑으로 덮고 싶어하는 영인에 대하여 작성한다. 수진은 본인의 사랑은 망가졌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녀가 행복했던 만큼 영인이 다시 남편을 사랑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컵에 감정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수진은 남자친구와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컵의 색깔은 금새 예쁜 분홍색으로 변한다.


“나는 지금 영인이의 사정이나 순대의 병원비를 핑계 삼아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외면해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해야 하고 옷을 입었으면 빨래를 해야 하듯 사랑을 했다면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남은 사람이 깨끗이 치워야 하는 것, 그렇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슬픔을 꼭 꼭 씹어서 소화시켜야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런 사람도 있었지 하고 지나가듯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꾹꾹 누르고 다져서 결국 내 마음의 굳은 살로 만들 수 있다면. … 하지만 그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적합 검사가 끝나고 영인의 남편에게서 전화를 받은 뒤 생각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결론은 훨씬 빨리 잊을 수 있는 감정전이로 마무리되었다. 진분홍색 기체 속에서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고 감정을 떠올리고 심호흡을 하니 전이 과정은 금새 끝난다. 성재를 떠올려도 그저 옛날의 기억정도로 기억이 되고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지만, 금새 부작용이 수진에게 찾아온다. “가슴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며 싸늘하고 시린 바람”을 느낀다.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영인은 영욱을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수진의 부작용을 해결해주려고 한다. 영욱은 다정했고 영인은 금새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영인의 남편 민후와의 통화를 통해 영인의 부작용 또한 듣게 된다. 영인의 표정과 생각이 온전히 영인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모습들과 그것들에서 오는 불안함에 대해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거라며 수진은 전화를 끊는다. 소설은 수진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 영욱 또한 감정전이를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전하며 마무리 된다.


 이 소설은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이터널 션사인”과 내용이 아주 유사하다.



영화와 동일하게 연인과의 기억을 인위적으로 지워버리는 행동을 통해 주인공들은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과 감정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을 채우고 있던 자리를 도려내어 순식간에 비워 버리니 새로운 사람으로 채우려고 해도 그 헛헛함이 쉽게 채워지진 않는다. 마음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오려진 감정을 가져와 붙이려고 하니 아무리 붙여도 이전처럼 혹은 이전보다 더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


네 사람은 앞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들의 사랑이 “괜찮지 않을 것이다.”에 의견을 더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과 시간이 요구된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때로는 큰 파도처럼 들어와 마음을 가득 채운다. 정신을 차려보면 손 쓸 수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내 마음을 내어준 누군가를 나만의 타인에서 어딘가에서 존재만 하던 완전한 타인으로 밀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고통을 준다. 기억은 지워질 수 없다. 그저 그 위를 덧칠하고 다른 것들을 붙여내면서 잊혀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마음을 덜어내는 것은 수진이 그러했던 것처럼 너무 아파서 “눈 감았다 뜨면 1년 후가 되었으면 좋겠어”라며 어서 지나가게 하고 싶어하기도 하며, 우리가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다.’ 생각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사실 나에게 유독 아프고 특별한 이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이별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다. 사랑의 끝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나만큼 사랑하던 누군가를 끊어내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고통의 해결 방법은 다양하다.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내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 과 같은, 그래도 버텨내야 한다는 뻔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억지로 도려내는 일, 억지로 덧붙이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 뿐이다. 불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행하는 많은 일들은 결국 더 큰 아픔으로 드러나게 된다.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것이다. 그게 옳지 않다고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앞으로 더 사랑할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을 택해 달라는 간청에 가깝다.


 사랑은 이별의 아픔도 내가 감수할 수 있을 때 완전히 매듭지을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의 매듭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놀라울 만큼 희미해진 기억을 마주하기도 하고, 이전보다 더 큰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이 사랑이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랑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열며 하고싶은 말은 마음 다해 힘껏 사랑하라는 것이다. 시작이 그러했듯 마무리도 내가 원하는 만큼 아파봐야 또 다른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어렵겠지만 부디 그 회복의 과정을 딛고 또 다른 마음으로 힘껏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사랑으로 아파도 결국 우리는 다시 사랑에 목매게 되니 말이다.




by.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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