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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Nov 12. 2023

서두르지 않으려 하는 마음

사랑에 대하여 1 : <가슴 뛰는 소설>을 읽고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알코올 중독자인 영경이 술에 취해 또박또박 반복했던 김수영 시인의 ‘봄밤’ 중 마지막 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절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과 대비되는 ‘또박또박’이라는 부사, 그것이 본인의 남편인 수환과의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로.


절망적인 상황 속 피어난 사랑이 더 애틋한 이유는, 그 선택의 강제성에 있을 것이다. 그대로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개인의 의지가 주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것 같은 선택. 종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끝에서 기댈 곳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기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건 주체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수환과 영경의 서사를 읽다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애틋함을 넘어서는 불편함. <구의 증명>에서의 구와 담의 서사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들의 비극이, 어쩌면 서로의 존재로 인해 야기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봄밤>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내가 비극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 생각이 수환이 영경의 외출을 허락하는 모습을 보며 들었다.


수환이 외출을 떠나는 영경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게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그 행동의 의미를 부여한다. 누구나 본인의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럼에도 영경을 보낸 이유는 그녀가 말해준 분모, 분자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든 간간한 정도로 낮춰 놓‘는다는 그것이 본인의 분모를 의미했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술에 취한 영경을 처음 집으로 데려다주던 봄밤, 수환은 영경과의 마지막이 같은 계절의 밤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간병인 종우가 수환의 마지막을 지키며 한 그 이야기, 왜 종우는 영경이 우는 모습을 보면 소연이 생각난다고 했을까. 소연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선물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연은 결핍이 없는 존재였을까? 단순히 꽃, 선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것. 그것을 바랬을 것이다. 종우가 수환이 영경의 외출을 허락한 것을 보며 ‘그건 선물이 아니’라고 말한 것을 보면, 왜 종우가 수환의 마지막을 지키는 순간에 본인이 소연을 찾는 이유를 모르는지 알 수 있다.


서두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은 서두르는 사람들이다. 김수영 시인도 그래서 시까지 써가며 본인의 서두르는 마음을 누르려 했겠지. 수환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아서 병에 걸렸고, 서두르지 않아서 걸을 수 없게 되었으며, 서두르지 않아서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죽지 못했다.




by.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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