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으려 하는 마음

사랑에 대하여 1 : <가슴 뛰는 소설>을 읽고

by 형태소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알코올 중독자인 영경이 술에 취해 또박또박 반복했던 김수영 시인의 ‘봄밤’ 중 마지막 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절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과 대비되는 ‘또박또박’이라는 부사, 그것이 본인의 남편인 수환과의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로.


절망적인 상황 속 피어난 사랑이 더 애틋한 이유는, 그 선택의 강제성에 있을 것이다. 그대로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개인의 의지가 주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것 같은 선택. 종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끝에서 기댈 곳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기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건 주체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수환과 영경의 서사를 읽다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애틋함을 넘어서는 불편함. <구의 증명>에서의 구와 담의 서사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들의 비극이, 어쩌면 서로의 존재로 인해 야기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봄밤>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내가 비극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 생각이 수환이 영경의 외출을 허락하는 모습을 보며 들었다.


수환이 외출을 떠나는 영경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게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그 행동의 의미를 부여한다. 누구나 본인의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럼에도 영경을 보낸 이유는 그녀가 말해준 분모, 분자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든 간간한 정도로 낮춰 놓‘는다는 그것이 본인의 분모를 의미했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술에 취한 영경을 처음 집으로 데려다주던 봄밤, 수환은 영경과의 마지막이 같은 계절의 밤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간병인 종우가 수환의 마지막을 지키며 한 그 이야기, 왜 종우는 영경이 우는 모습을 보면 소연이 생각난다고 했을까. 소연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선물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연은 결핍이 없는 존재였을까? 단순히 꽃, 선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것. 그것을 바랬을 것이다. 종우가 수환이 영경의 외출을 허락한 것을 보며 ‘그건 선물이 아니’라고 말한 것을 보면, 왜 종우가 수환의 마지막을 지키는 순간에 본인이 소연을 찾는 이유를 모르는지 알 수 있다.


서두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은 서두르는 사람들이다. 김수영 시인도 그래서 시까지 써가며 본인의 서두르는 마음을 누르려 했겠지. 수환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아서 병에 걸렸고, 서두르지 않아서 걸을 수 없게 되었으며, 서두르지 않아서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죽지 못했다.




by.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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