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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Nov 12. 2023

SF, 사랑의 픽션

사랑에 대하여 1 :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읽고

 얼마 전 수업에서 ‘사랑’이라는 제재가 핵심인 시를 발표했다. 시적 상황은 한 마디로 “사랑하기에 극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작의를 밝히자면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를 떠올리면서 쓴 글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그런데 합평에서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모두가 시의 화자와 함께 떠난 ‘그 애’가 연인 사이라고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는 사랑의 기본형이 담백한 ‘애정’에 가까운데 다른 사람들은 성애를 기반으로 한 감정을 더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평소에도 사랑에 대해 일반적인 감상과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개념에 대한 감각 자체가 다른데, 내가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유효할까? 라는 생각이 더 확고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극단적이게도, 당분간 모든 창작물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조금 더 확신을 가졌을 때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때로는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사랑을 나의 방식대로 솔직하게 탐색하고, 구체적으로 괴로워하기로.


 그런 측면에서 SF는 아주 적절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SF는 결국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SF의 재미는 과학적 상상력을 밀어붙여 미래에 대해 탐구하는 아이디어에서 온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빛나는 아이디어와 재미있는 세계관이 있더라도, 그 속에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사고실험 혹은 수많은(아마 폐기될) 이론 중 하나에 그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논리적 탐구라는 뼈대에 인간의 이야기라는 살을 붙여야 하고, 그것은 대부분 사랑으로 가장 훌륭하게 봉합된다.


 사랑은 수많은 과학적 검증에도 불구하고 그 불확실성을 여전히 담지한 영역으로, 때로 가장 ‘인간’적인 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 포스트 아포칼립스, 비인간 존재 등 문학 장르 중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타자의 존재감을 내포하는 SF 장르의 특성상 독자가 그 안에 몰입하기 위해서도 ‘인간’적인 것은 중요한 요소이다. 결국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SF 소설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발화한다. 작게는 나와 주변 사람부터, 비인간 존재와의 사랑, 인류에 대한 거대한 애정, 혹은 세계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천선란의 「뼈의 기록」은 그중에서도 비인간 존재의 사랑을 논하고 있다. 로비스는 시신, 특히 연고가 없거나 시신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염해주는 장의사 안드로이드이다. 로비스의 주변 인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무영, 모미)이고 하나는 죽은 이와 그를 통해 연결된 이들이다. 로비스는 기계이다. 시신을 염하면서 죽은 자의 시간을 돌리는 일보다 시신에 알을 깐 구리금파리를 보호하는 것이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장의사 로봇에게 적합한 태도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의문을 갖는 것 자체,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태도 자체가 남은 이들에게는 헤아림과 위로가 된다. 죽음을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는 기계. 그 아이러니는 박도해와 레나의 몸, 그리고 모미와 첼과 나눈 대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뼈로 정의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로비스가 가장 적절하고,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모미의 시신을 대할 수 있도록 한다. 불을 싫어하는 모미를 우주로 보낸 것이다.


 이 단편에서 우리는 사랑의 어떤 속성을 포착할 수 있을까. 먼저, 이 소설의 초점 인물(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은 로비스이다. 로비스는 단순한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목적성이 뚜렷한 휴머노이드이다. 시신을 염하는 목적으로 태어난 로비스에게 과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능(그렇게 보일지라도)이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그러나 로비스에게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질문이다. 이를 통해 로비스가 비인간으로서 던지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들은 우리가 자명하고 무심하게 넘기던 일들에 대해 새로운 모색을 하게 도와준다, 라는 다분히 비평적인 결론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로비스의 질문이 사랑의 아주 중요한 속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사랑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로비스의 질문은 ‘미지에 대한 응시’가 된다. 어떠한 대상을 사랑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아닌 무언가라는 점에서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 사이에는 공백의 영역이 생긴다. 그렇기에 언제나 사랑은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로 인해 언제나 대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할 수 있다. 그 물살을 거스르는 움직임이야말로 사랑의 태도가 된다. 로비스는 언제나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인간이라는 미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모미의 존재는 그 사랑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보여준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로비스에게 모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답한다. 결말부에서 로비스가 모미를 우주로 보내는 장면은, 인간을 헤아리던 로비스의 모습에서 ‘모미’를 헤아리는 로비스의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로비스에 대해 상대적으로 건조한 태도를 보이던 무영이 로비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질문’하게 만들고, 그 일은 계속해서 로비스가 죽음을 헤아리는 기계로써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사랑이 가진 확장적 순환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랑의 태도가 모미에 대한 사랑을 만들고, 그것이 다시 사랑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천선란의 「뼈의 기록」을 통해 사랑에 대한 짧은 글을 써보았다. 사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비인간을 통해 ‘사랑’을 논하는 것이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진 약간의 약점을 회피하는 행위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어떤 문제에서는 거시적인 접근이야말로 핵심을 피해가는 길이 되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와 동시에 명확한 아쉬움을 표하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이를 더 보완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고 싶다.




by. B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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