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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Nov 12. 2023

신적 존재로서의 사랑

사랑에 대하여 1 : <가슴 뛰는 소설>을 읽고

<햄릿 어떠세요?>에 대해 알아보기 이전에, 작중 주요한 미장아빔으로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대사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에서 알 수 있듯, <햄릿>은 자아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찰하는 작품이다. <햄릿 어떠세요?> 역시도 존재의 성찰에 대한 모티프가 자주 등장하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나’의 사유에서 존재는 누군가로부터의 ‘필요’와 등치된다.


아이돌 데뷔에 실패하고, 대학에 복학한 ‘나’는 ‘연극과 문화’ 수업에서 ‘곰곰’을 만나게 된다. ‘나’는 ‘너무 심심했기 때문에’ ‘곰곰’과 연애를 시작하고, 그녀는 등을 돌린 채 잠든 그를 향해 ‘우리는 진지한 사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에 ‘곰곰’은 잠자리에서 뛰쳐나가 화장실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에 실패한 ‘곰곰’은 ‘나’에게 ‘나, 정말 네가 필요해’라고 말하고, ‘나’는 연습생이자 상품으로 여겨졌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의 말에 감동한다. ‘나’는 필요에 의한 연애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이라는 사실’, 즉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현전성을 인식하게 된다.


필요는 ‘나’와 ‘곰곰’과의 연애에서 발생하는 위기에도 관여한다. ‘나’는 ‘곰곰’이 어학원 강사로서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사는 모습을 목격한다. 더 이상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가난에서 벗어나려 하는 ‘곰곰’을 바라보는 그녀는 ‘곰곰, 아직도 내가 필요한 거 맞지’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불안에 빠진다. 필요는 대상이 가진 특별함에서 기인한다. ‘나’는 ‘곰곰’에게 ‘자신을 특별하다고 믿었지만, 자신은 특별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특별해지고 싶어 하는 욕망 자체가 곧 특별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녀는 ‘곰곰’을 바라보며, 그에게 점점 자신은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제 ‘곰곰’에게 ‘나’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존재로 전락하고, 필요에서 멀어지는 두려움은 둘의 관계를 잠식한다.


필요라는 존재 가치는 연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나’는 상품으로서의 필요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스물한 살이 되고, 데뷔에 실패하며 ‘가능성의 끝자락’에 놓이게 된다. 연예인으로서의 삶을 체념한 ‘나’는 ‘곰곰’과의 연애 도중, 서바이벌 오디션에 출연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녀는 다시 특별해지기 위해 라미네이트를 받고, ‘이모’라는 멸칭을 받으며 오디션에 참가한다. 그러던 중 ‘곰곰’이 군에 입대하게 되고 둘의 연애는 끝을 맺는다. 여기에 더해 ‘나’는 오디션에 탈락하며 마지막 무대를 녹화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그녀는 모든 필요로부터 박탈되어 홀로 남는다.


<햄릿 어떠세요?>의 플롯은 ‘데뷔의 실패/‘곰곰’과의 연애/재데뷔의 실패와 ‘곰곰’과의 이별‘로 축약할 수 있다. 즉, 두 번의 실패 사이에 사랑이 위치하는 양상을 띠는 것이다. 이러한 실패의 변증법은 어찌 보면 가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소설은 ‘나’의 20대 초반을 두 번의 실패로 규정함으로써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여지를 유보한다. ‘나’에게 있어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대안은 없으며 오직 ‘포기와 체념’이 ‘나를 위한 최선’이 된다.


밤하늘의 별을 의심하지 마시오.
태양의 움직임을 의심하지도 마시오.
비록 진리를 허위라 의심해도,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는 마시오.
사랑하는 오필리어여, 나는 비록 시에는 서투를지 모르나,
오직 한없이 그대를 사랑하오.
이 마음 부디 믿어 주기를.
안녕히. 이 생명 죽을 때까지 목숨 바쳐 사랑하는 그대여.
이 몸도 마음도 그대의 것이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플롯을 스토리로 확장해보면 도식의 구조가 변모한다. ‘나’가 데뷔에 실패하기 이전에, 그녀는 훗날 마약 복용으로 구속될 남자를 포함하여 ‘번번이 구질구질하고 엉망진창인 남자만 골라’ 연애를 해왔다. 또한 ‘곰곰’과의 사랑이 끝난 동시에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올라선 마지막 무대에서 ‘나’는 수업에서 ‘곰곰’이 읊었던 <햄릿>의 대사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필요로서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에 있어 ‘포기와 체념’을 택한, 즉 ‘not to be’의 상태에서 최후에 떠올린 것은 바로 ‘곰곰’과의 추억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찰하면 플롯에서 나타난 실패의 도식의 앞뒤에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고통과 실패에는 사랑이 편재되어 있었다.


이로써 도출된 사랑의 편재성과 동시에,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햄릿>의 대사로 사랑이 가지는 절대적인 속성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작중 ‘곰곰’의 입을 빌려 발화된 대사는 사랑을 ‘밤하늘의 별’, ‘태양의 움직임’, 심지어는 ‘진리’를 초월한 것으로 정의한다. 사랑은 어떠한 의심도 거부하는 이데아적 존재로서 현존하는 것이다. ‘인간을 한껏 구겨지고 쪼그라들게 만드는’ 실패의 연속에도 사랑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지켜왔으며, 모든 실패 끝에 지친 ‘나’의 마지막 순간에도 ‘손가락 사이로 빛’처럼 새어드는 것은 사랑이었다.


<햄릿 어떠세요?>의 ‘나’처럼 우리는 특별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는 ‘뻗으면 곧 잡힐 것 같지만, 너무 먼 강 너머의 불빛’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욕망은 해소될 수 없고, 삶은 실패로 나열된다. 여기서 편재적이고 절대적인, 신적 존재로서의 사랑은 우리가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기제가 된다. 우리는 모든 실패들에 틈입하는 사랑을 영위할 것이며, 사랑은 우리의 필요, 즉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이상적인 가치로 남을 것이다. 어쩌면 박상영 작가는 <햄릿 어떠세요?>를 통해 이러한 것들을 피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을 존속해야 할 당위를 위해. 어떠한 위협에도 신화로서 우리 사이에 잔존해야만 하는 사랑에 대해.




by.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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