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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an 05. 2024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사랑에 대하여 2 : 최은영 <밝은 밤>을 읽고

최은영의 ‘밝은 밤’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4대에 걸쳐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지연은 주인공으로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녀는 이혼 후 외할머니가 거주하는 희령으로 내려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외할머니인 박영옥과 소설 내내 친밀함을 쌓아가는 인물이다. 길미선은 지연의 엄마이다. 이정선은 지연의 증조모로 백정의 딸로 태어나 일본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박희수 즉, 지연의 증조부를 따라 병든 엄마를 두고 떠난다. 그러나 지연의 증조모와 증조부는 이 선택으로 인한 결혼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간다. 그 외에도 지연의 증조부와 증조모에게 모두 영향을 많이 끼친 새비 아저씨와 아주머니, 새비 부부의 딸인 김희자, 새비 아주머니의 고모인 박명숙 등의 인물이 소설에 등장한다. 지연은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희령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외할머니인 영옥과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읽어주면서 가족의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많은 마음의 상처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외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가진 외롭고 아픈 기억, 일찍 죽은 지연의 언니에 대한 지연과 엄마 미선의 아픈 기억,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을 쉽게 말하는 엄마 영옥에게 상처를 가진 미선, 사랑하는 남편의 외도로 마음의 상실을 경험한 지연 등 소설에서는 수많은 사랑의 상실, 삶의 고통과 시련이 드러난다.


나는 사실 이 소설에서 주요하게 드러난 가족 간의 사랑 혹은, 대를 넘어서는 이야기들 그 자체에 주목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지연이 상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재 희령으로 내려온 지연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먼저 이전에 지연이 다시 사랑할 수 있기 위해 선택한 방법들을 함께 바라보자.


1. 피하고 묵인하며 사는 것


“하나하나 다 맞서면서 살 수는 없어 지연아, 그냥 피하면 돼. 그게 지혜로운 거야.”라는 엄마 미선의 말에 지연은 “난 다 피했어, 엄마. 그래서 이렇게 됐잖아. 내가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게 됐어. 눈물은 줄줄 흐르는데 가슴은 텅 비어서 아무 느낌도 없어.”라고 답한다.


“엄마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고 말했었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꾸리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던 엄마를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띄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 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미선은 늘 아픔을 외면했다. 첫째 딸의 죽음도, 둘째 딸의 아픔도, 모두 외면하고 없던 일처럼 사는게 맞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딸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평범한 삶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더 꿈꾸지 않아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그 결과 미선 자신의 삶도 크게 나아지지 않아 언제든 첫째 아이의 기억을 떠올리면 눈물을 흘려야 했고, 그럼에도 눈물을 금새 닦고 일어서야 했다. 미선의 조언을 따른 지연도 역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마음을 채우기 위해 아무리 애써봐도 그대로 쏟아져 흘러내리는 상태가 된다. 상처나 아픔을 무작정 피하려고 하다 보면 이렇듯 언젠가는 마주할 진실 혹은 사랑의 기억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진다. 아무리 애를 써 마음을 이어 붙이려고 해도 찢겨버린 흔적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하고 나중에는 손 쓸 수도 없이 커져 쏟아 부은 모든 것이 그대로 흘러 버려진다.


1. 더 나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이혼 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더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 잘 사는 것이 복수라고, 보란 듯이 잘 살면 된다고 말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내 등을 천천히 두드리는 손길에서 내 등을 후려치는 채찍이 되는 동안에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지연은 강해지려 했지만, 쉽게 강해지지 못했다. 앞으로 더 잘 살면 된다고 잘 살아야만 한다고, 극복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곤 했다.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울고 두려움에 떨면서 나의 작고, 약한 모습을 바라본다. 사랑을 상실했을 뿐인데 나는 나를 잃어간다.


1.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며 사는 것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은 사람 앞에서 나의 진실을 떠벌리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엄마의 고통 앞에서 나의 진실은 가치가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엄마의 불행에 나의 불행을 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거짓말을 했다.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잘 자고 잘 먹고 있다 고, 문제가 없다고. 나는 언제나 잘 웃는 아이였고, 자라서는 잘 웃는 어른이 됐다.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 때도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지연은 나 자신보다 ‘엄마’를 배려하는 게 편했고,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것보다 ‘나’를 질책하는 게 더 편했다. 나를 더욱 차갑게 함부로 대하는 방식은 타인을 용인하게 만들었다. 그게 그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거나 그들의 잘못이라고 판명나는 일보다 쉽기 때문이다. 나를 찢어가며 나를 상처주는 일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다 쉬웠다. 그게 나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나를 잃어가게 하는지는 모르고 지연은 그렇게 나를 몰아세우는 것에 익숙해졌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 받지 못한 사람 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 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 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연의 세상은 체념과 자기 부정, 눈물과 자기 비판으로 뭉쳐간다. 하지만, 이렇게 지연의 삶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외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엄마와 다투면서, 목소리를 내면서, 친구의 위로를 받으면서 그 깊은 상처가 아물어가고 흩어진 고통의 파편들이 조금씩 모여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제 어떻게 이 상처들이 덮여지는지 확인해보자


1. 나를 인정하기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 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언제부터 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 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 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 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부정하고 깎아내리던 지난 날과는 다르게 지연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과도하게 달라지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내 한계치 이상을 인내하려고 하지 않게 되었고 나를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게 되었다. 이렇듯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또 한 번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1. 도움을 요청하기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돕는 것은 쉬웠다. 내가 돕기 어려운 일을 돕는 것도 할 만했다. 하지만 나를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일은 내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징징대고 싶지 않았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다른 이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것,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꾹 참아내며 살았지만, 외할머니와 이야기하고, 할머니의 과거를 물어보고, 듣기 시작하면서 타인의 상실도 마주한다. 큰 조언이나 위로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도와 달라 손을 먼저 내미는 일이 지연에겐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부탁에 할머니는 진심으로 응하고 이를 통해 지연은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음을,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1. 사랑을 온전히 받기


”‘넌 사랑받기 충분한 사람이야.’ 어느 날 말을 이을 수 없어 눈물만 흘리던 내게 지우가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할게. 이제 사랑받는 기분이 뭔지도 느끼며 살아.’“


밝은 밤에서 여성 주인공들은 모두 친구가 옆에서 나를 도와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엄마의 친구가 그랬고, 할머니 곁의 희자, 지연에게 사랑을 진심으로 알려주던 지우가 그 대상들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주인공들은 힘든 시간에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나누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사랑을 부정하며 나를 미워하고 질책하던 지연에게 지우의 말은 오래 남아 다시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렇듯 세대를 거스른 이야기들은 마침내 어두웠던 지연을 밝게 만들어 준다. 타인을 통해 얻은 마음의 상처와 사랑의 상실은 극복이 어려우나 불가능하진 않다. 그렇기에, 내가 스스로 나를 돌아보며 나아지기 위해 삶을 지속하는 것,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눌 수 있는 것,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과 같은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회복 될 수 있을 것이다. 쉽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덮어낼 수 있다. 비록, 다른 사람과 다른 형태로 이전의 사랑을 덮어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랑을 덮어두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이정도면 많이 아팠다고 많이 울었다고 생각하지만, 고통이 또 다시 끊임없이 밀려오는 날들도 있다. 사람에 대한 상처는 그 어떤 상처보다 크게 남아 다 잊었다고 생각하며 살다 가도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다시 튀어나와 괴롭힌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자연히 그 기억들이 잊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회복에는 아마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어떤 이들의 사랑과, 내 주변 누군가의 마음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또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더 큰 사랑으로, 잔잔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by.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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