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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an 05. 2024

시간에 대응하는 기억

사랑에 대하여 2 : 최은영 <밝은 밤>을 읽고

“전남편에게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는 말을 즐겨 했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유 의지나 선택이라는 것 또한 커다란 환상일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중략) 그런 믿음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후회의 덫에서 구원해준다.”

(P. 193.)


최은영 소설가의 <밝은 밤>에서는 외도로 주인공 ‘지연’과 이혼한 전남편이 시간을 ‘얼어붙은 강물’이라고 표현하는 대사가 몇 차례 등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선형적인 시간은 특정한 결말로 귀결되도록 정해져 있으며, 인간은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앞에서 굴종해야만 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양태들은 ‘일어날 일’에 불과한 것이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운명론적 시각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방어 기제가 된다.


시간과 운명은 인간의 무력함에 조소를 보내듯 소설 속 여성들의 삶에 고통을 부여한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지연’의 증조모 ‘정선’은 자신을 구한 ‘희수’와 결혼하지만, 그의 태도가 변하는 것을 목격하며 주위로부터의 천대와 6.25 전쟁을 경험한다. 할머니 ‘영옥’은 ‘남선’의 본처가 속초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일갈하며 홀로 ‘미선’을 키워낸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미선’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는 신념 하에 장녀 ‘정연’의 죽음을 감내하며 가부장적인 남편과 살아간다. 그렇게 이들은 횡행하는 시간 속에서 동반자를 비롯한 타인의 ‘인간존재를 체념’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지연’은 전남편과의 이혼 후 가족의 멸시 속에서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지연’의 태도는 앞서 언급한 인물들과 사뭇 다르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시선에 반항하며, 다른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지연’은 반려견 ‘귀리’의 죽음을 겪고, 시간의 절대성에 굴복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에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오직 ‘지연’만이 시간에 회의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시간의 폭정 앞에서 무력할까. ‘귀리’의 죽음 직후에 시간의 축이 뒤틀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연’은 ‘귀리’를 묻어주고 오는 길에 음주 운전을 하는 운전자에 의해 교통 사고를 당한다. 여기서 그녀는 일종의 환상을 경험한다. ‘지연’은 할머니와의 기억, 언니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중학교 시절과 스물 두 살의 이별, 그리고 남편과의 이혼을 상기한다. 그러나 환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여덟 살의 모습을 한 언니 ‘정연’이 ‘난 널 떠난 적 없어’라고 말하는 모습이다. 환상은 시간과 달리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며 ‘지연’의 기억들을 산발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소설의 구조가 ‘지연’의 일상과 ‘영옥’의 서술이 교차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소설 초반에 ‘지연’은 ‘영옥’과 조우하고, 그녀로부터 ‘정선’과 ‘미선’, 그리고 ‘영옥’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듯 ‘영옥’의 발화를 통해 소설은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를 횡단한다. 게다가 얼핏 보면 ‘영옥’의 서술이 시간순으로 진행되지만, 실은 ‘영옥’의 이야기 역시도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정선’의 삶을 포함하고, 제시되는 사건들은 그녀의 관점을 경유하며 그녀가 기억해낼 수 있는 한계에 국한된다. 즉, 소설의 구조는 전지적인 시점에서의 객관적 사실의 배열이 아닌, ‘영옥’ 개인의 재해석과 능력에 따라 주관적인 기억을 나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소설의 구조는 내용과 조응하며 의미를 도출한다. 소설에서는 여러 꿈들이 등장하는데, ‘지연’의 꿈에서 나타난 할머니, 언니와의 기억들은 꿈을 통해 그녀의 현실에 틈입한다. ‘영옥’도 ‘지연’과의 이야기 이후, 어머니에 대한 꿈을 꾸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미선’도 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정선’과 만난다. 그녀는 ‘정선’과의 만남을 통해 ‘내게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한다. 이렇듯 꿈들은 시간을 역행하며 개인의 기억으로 회귀한다. 또한 소설의 후반부에서 ‘지연’과 ‘미선’은 과거의 사진을 시간순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정리한다. 이렇게 정리된 사진 이 ‘영옥’의 장식장 한 켠에 위치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기억이 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이데거는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대상들과 관계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현존재(Dasein)를 설명한다. <밝은 밤> 역시도 기억들을 서술하는 데에 있어 대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선’은 ‘영옥’에게 이야기한 기억의 대부분을 그녀를 물심양면 도와줬던 ‘새비 아줌마’에 할애한다. ‘영옥’ 또한 ‘새비 아줌마’의 딸, ‘희자’와의 추억들을 중심으로 그녀의 과거를 서술한다. ‘미선’은 과거에 우체국에서 함께 일했던 ‘명희’를 보기 위해 멕시코로 여행을 가며 기존의 삶에서 일탈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기억들을 조합하는 ‘지연’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유기견과 유기묘와 함께 삶을 지속할 힘을 얻게 된다. 그렇게 <밝은 밤> 속 여성들은 시간이 가한 폭력에도 서로의 관계를 통해 기억하고 존재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우는 힘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절박하게 기억’한다.


이들의 기억 속 관계들은 사랑을 내포한다. ‘정선’과 ‘새비 아줌마’, ‘영옥’과 ‘희자’, ‘미선’과 ‘명희’는 개인의 존재를 헤집어 놓는 삶의 부침 속에서도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함으로써 사랑한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지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편린들의 종합이 ‘한 사람의 삶의 크기’보다 클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즉 ‘지연’은 자신의 삶에 점철된 순간과 기억들, 그리고 기억 속 관계들 속에서 자신을 직시함으로써 자기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과 관계 맺고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를 기억하고, 이 기억 속에서 누군가, 그리고 관계하는 나는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관계와 사랑은 시간의 중력에서 탈피하여 개인이라는 우주 속에 자리잡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억압하는 시간과 운명에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라는 강물의 얼어붙은 표면을 깨트릴 기억으로. 그렇게 흐르는 강물 위를 부유할 사랑으로.




by.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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